티엔무 사원을 구경하고 다시 호텔 앞으로 돌아온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베트남식 쌀가루 요리와 사이공 맥주로 점심을 먹으며 다음 일정을 체크했다. 인천공항에서 하루 동안 발이 묵였던 우리의 가이드 강곤 형님도 합류를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 평화 기행의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퐁니 퐁넛 마을을 방문할 차례다. 일단 퐁니 퐁넛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곳 후에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가 처음 방문했던 도시인 다낭을 지나 호이안으로 가야한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60여km 떨어져 있는데, 전세계의 해변들 중 가장 아름답기로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안방비치(anbang beach)가 바로 이 곳에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들어가 체크아웃을 한 뒤, 오후 두 시 쯤 호이안으로 가는 침대버스에 올랐다. 베트남에서는 이 침대버스가 보편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어딜 가도 4-5시간 안에 도착하는 한국인지라 침대 버스가 거의 필요가 없지만, 이 곳 베트남은 나라가 워낙에 긴 탓인지 4시간 단거리 노선에도 침대버스가 투입된다. 그런데 이 침대버스가 나에게는 영 편하지가 않다. 키가 180이 넘으니 발을 끝까지 뻗으면 의자가 굽어지는 라인과 다리 길이가 맞지 않아 거의 네 시간동안 무릎을 필 수가 없으니 너무 불편하다. 만약 나중에 베트남에 다시 오게 된다면 아무리 장거리를 가도 일반 좌석버스를 탑승하는 게 낫겠다 싶다.
그렇게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호이안은 확실히 다낭과는 다른 분위기다. 씨클로와 오토바이가 아니라면 중국의 어느 시골 마을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준다. 무역의 중심이 호이안에서 다낭으로 옮겨 가면서 호이안은 졸지에 잊혀진 항구 마을이 되었는데, 그 덕에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20세기에 베트남에서 일어난 많은 전쟁의 파괴에서 빗겨나, 건축물들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었고, 그렇게 지금은 전형적인 관광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오후 다섯 시가 채 되지 않았다. 하루 만에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는 강행군 탓인지 조금 피곤하다. 두 시간쯤 침대에 누워 쪽잠을 자고 일어나 일행들과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본격적으로 호이안 시내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해가 진 호이안의 밤거리는 정말 아름답다. 호텔, 식당, 바, 맞춤 옷가게, 기념품 가게 등이 구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곳의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쉴 새 없이 카메라에 손이 간다. 오래된 집은 물론이고,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수많은 그림 가게들과 기념품 가게, 옷 가게들과 카페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그림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동남아시아의 무역항으로서 잘 보전된 사례라는 점을 인정받아, 1999년 호이안의 이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고 하니, 왜 사람들이 베트남 여행 중 빼놓지 않고 찾아가봐야 할 명소라고 하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음날 아침, 호텔 앞으로 이 평화기행 멤버들을 태우고 다닐 승합차가 도착했다. 대중교통으로 퐁니 퐁넛 마을을 방문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운전기사가 딸린 승합차를 렌트한 것이다. 이틀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 줄 수줍지만 친절한 운전기사 청년의 얼굴이 꽤나 믿음직해 보여 안심이 된다. 호텔에서 간단한 조식을 먹고, 우리는 그 염원하던 퐁니 퐁넛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꽝남성 퐁니 퐁넛 마을은 베트남의 주요 간선도로인 1번국도 옆에 위치해 있다. 호이안 시내에서 한적한 시골도로를 삼십 분쯤 내달리다 드디어 차가 도로변에 멈춰 섰다. 퐁니 퐁넛 마을 입구, 그 유명한 ‘단명의 길’에 두 발을 내딛은 것이다. 68년 2월12일, 한국 군인들이 마을로 진입하려다 부비트랩으로 동료를 잃자 마을로 진입해 74명의 비무장 민간인(이들은 대부분 노인과 여성 그리고 갓난아기였다)을 살상했다. 한국군인들이 마을을 떠나자 남베트남 군인들이 희생당한 가족의 시신을 늘어놓았던, 그 1번 국도... 이 곳 사람들은 이 길을 ‘단명의 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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