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어있는 어둑한 후에의 첫인상은 다낭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다낭이 보편적인 도시의 느낌이었다면, 후에는 전형적인 관광도시의 느낌이랄까. 일단, 다낭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시클로들을 거리 여기저기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점과, 또한 베트남의 대표적인 역사도시답게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배낭여행자들이 거리의 음식점과 술집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우리는 일단 시클로 두 대에 나눠 타고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었다. 호텔방 테라스에 나가보니 바로 지척에서 흐르는 흐엉강(Perfume river, 香江)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흐엉강을 한자로 읽으면 향강, 즉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강이라는 뜻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이 강을 ‘향기가 나는 강’이라고 부르는 이유에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 강의 원류에 thạch xương bồ 이라는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석창포' 라는 식물이다. 이 나무가 크게 자라자 강물 전체에 이 나무의 향기가 베어들어 강물 전체에서 향기가 났다고 해서 이 강을 '향기로운 강'이라고 이름을 붙였단다. 그래서 다른 강에 비해 물맛도 다르고, 이 물로 만든 맥주는 그 맛과 질이 다르다고. 실제로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맥주인 후다 맥주(Bia Huda)가 바로 이 흐엉강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일행들과 호텔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유람선들이 줄지어 서 있는 흐엉강변으로 나갔다. 이 유람선들 안에서는 하루 두 번씩 선상공연이 열린다. 1인당 오천 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유람선에 오르면 배는 강 한가운데까지 나아가 멈춰서고, 그제야 비로소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아가씨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네 명의 아가씨가 순서대로 30분가량 노래를 부르는데, 손님들은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고 생각하는 아가씨에게 꽃을 사서 선물할 수가 있다는 게 재밌다. 꽃은 생회가 아니라 조화이며 한 송이에 약 오 천원 정도. 아마도 손님들이 지불하는 이 꽃값이 바로 노래하는 아가씨들의 주된 수입인 듯 했다.
다음 날, 호텔 식당으로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서울에 홀로 남았던 강곤 형님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우리가 다낭으로 떠났던 그날 밤, 서울에 홀로 남아 여행사를 통해 비자를 구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비자를 구해 다음 날 저녁 비행기로 다낭에 도착하여 또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이 곳 후에에 도착하셨다고. 이제야 비로소 우리에게도 든든한 가이드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놓인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택시를 나눠타고 흐엉강을 따라 티엔무 사원으로 향했다. 티엔무 사원은 후에와 베트남 현대사의 혼란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이 사원이 유명한 이유는 베트남 통일 전 불법을 탄압하고 부정부패가 판치는 월남정부에 항거하여 스스로 몸을 태워버린 틱꽝득 스님이 거처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미국의 그 유명한 락밴드 ratm의 첫 앨범 커버 사진에 등장하는 그 스님으로 먼저 기억되는 분이다. 당시 남베트남을 통치한 응오딘지엠과 지주들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가톨릭을 옹호하고 불교를 탄압하였다. 그런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틱꽝득 스님은 1963년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제 몸을 불태우는 소신공양을 실천한다. 틱꽝득의 소신공양 광경은 베트남 국내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각국의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화염 속에서도 전혀 표정의 일그러짐 없이 정좌자세로 조용히 죽음에 이르는 의젓한 모습은 많은 충격을 주었다.
한편 남베트남 대통령 응오딘지엠의 동생인 응오딘누의 부인이자 가톨릭 신자인 마담 누(Nhu)는 미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틱꽝득의 죽음을 ‘땡중의 바베큐 쇼’라고 깔아뭉개는 망언을 하여 베트남 국민과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이런 몰상식한 발언으로 마담 누는 ‘드레곤 레이디’라는 악명을 얻었다. 사건 뒤 틱꽝득 승려의 유해는 수습되어 화장되었는데, 화장 중에도 틱꽝득의 심장은 손상되지 않은 채 멀쩡하게 남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때 틱광득 스님이 사이공 캄보디아 대사관으로 몰고 갔던 자동차도 이 곳에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이 자동차 앞에서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나는 이 점이 조금 웃겼는데, 뭐랄까... 이 신성한 사원 안에서도 물신숭배가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흐흐.
'숨 평화기행 > 2016년~202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기> 베트남 기행 마지막 편 : 힘겹고 힘겨운 평화 그리고 더 힘겨운 평화기행 - 평화를 마주하다_림민(회원) (0) | 2019.10.23 |
---|---|
<후기> 베트남 기행 다섯 번째 : 힘겹고 힘겨운 평화 그리고 더 힘겨운 평화기행 - 호이안 그리고 퐁니퐁넛 마을_림민(회원) (0) | 2019.10.22 |
<후기> 베트남 평화기행 세 번째 : 힘겹고 힘겨운 평화 그리고 더 힘겨운 평화기행 - 후에 편_림민(회원) (0) | 2019.10.22 |
<후기> 베트남 평화기행 두 번째 : 힘겹고 힘겨운 평화 그리고 더 힘겨운 평화기행 다낭 편_림민(회원) (0) | 2019.10.22 |
<후기> 꽝남성인민학살을 기억하라_나순 결(회원, 녹색당 당원) (0) | 2019.10.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