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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평화기행/2016년~2021년

<후기> 꽝남성인민학살을 기억하라_나순 결(회원, 녹색당 당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2018년 베트남 다낭--

 

커피 얘기로 시작혀 본다. 내는 모른다, 어처케 로스팅혀서 어처케 드립을 허면 신맛이 풍부해지고, 풍미가 깊다 너르다 웅혼하다 등등 은 모다 강건너 불구경일 뿐. 하노이에서 맛본 커피나 다낭 콩캬풰에서 맛본 커피나 후에 강변 꺄풰 러시아의 우정에서 맛본 커피나 뭐... 다 거기서 거기였단 말이다. 오히려 하노이 중앙 호수 옆 길 다방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들이켰던 둘둘둘 다방커피가 맘에 남아 있고, 해서 그곳에 머무는 이틀간 매일 아침 출근혀서 다방아지매와 어색한 웃음을 나누며 향수를 달랬다. 그 뿐일까! 호이안에 머믈 땐 호텔 앞 간이식당 블랙풔스트에서 아침마다 아메리카노-우리네 아메리보다 더 묽다, 숭늉이다-를 마셨다, 4일 내내. 그래서 일까 마지막 날 헤어지며 잘 지내라고 혓드니, 다녀 오라구, 문 닫지 않구 장사 계속허구 있을테니 맘 편허게 잘 다녀오라는말꺼정 들었다(내 영어만큼 짧았던 쥔장으 베트남글리쉬를 대충 내는 이렇게 알아들었다). 요는 그런 것이다. 커피구 커피의 맛이구, 인테리어구, 찻잔이구, 에스프레소머쉰이구 간에 그것은 오브제라는 것이다, 중요헌 것은 인간의 일, 인간사다. 좀 더 진중허게 숙고헐 그릇이라면 당연히 생명에 관한 일이라는 것이다, 생명활동이 있음으로 해서, 들숨과 날숨이 있음으로 해서 창 밖 거리와 풍경이, 조바심인지 기냥 습관으로 굳어진 건지 알 수 없는 끊임없이 되돌이표로 흐르는 빵빵거리는 자동차의 소음폭력이, 폐지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굽은 등에서 보이는 삶의 진한 굴곡이, 이숙영미용실을 쥐락펴락허는 따님의 변해가는 머리카락 색깔이, 경쟁관계는 아니겄지만 쪼로록 붙어서 청대복사와 중앙복사와 유안사의 보이지 않는 길항이, 행복카페 인희언니 들숙날숙헌 커피맛이 모두 온전하게 내게 다가온다, 하루를 완성시킨다, 짐짓 모잘라 보이구 지루해 보이는 일상이 출렁이며 뜨겁게 내게 부닥쳐 오는 것이다. 왜냐! 생명이기 때문이다. 내는 그렇게 세상과 조우하며 하루를 완성해 내고 언젠가는 내 인생을 완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완생이다. 좀 더 겸손헌 표현으론 죽음이라 말헐 수 잇것다. 그리 힘들이지 않아도, 악력허지 않아도 그리 된다. 삶은 그런 것이니까. ‘사람이 먼저다아니다, 결코 아니다. ‘경제가 먼저다어건... 입이 아프다. 경제가 먼저라고 말허는 놈들은 예의주시허며 긑꺼정 경계해야 헌다, 거개의 경우는 여기서 경제란 자기자신만으 자기일속만의 경제를 말할 뿐 우리 모두의는 그들의 뇌주름 어디에도 각인되어 있지 않다, 다같이 눈에 불을 켜구 아니다 싶으면 즉시 타격헐 일이다. 분명허게 말헌다, 생명이 먼저다, 생명이 무엇보다두 먼저다. 생명을 속박허는 구속헐 수 있는 논리나 이유는 성립허지 않는다, 공염불일 뿐.

 

그런데, 우린 너무나 쉽게 생명이 먼저다라는 명제를 잊어 버린다, 잊어버리구 말면 다행인데, 아무 일도 없으면 다행인데, 폭력이란 묘헌 것이, 내버려 두면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고, 그들의 피와 살과 노동을 착취해서 부지불식간에 두배 세배로 몸집을 불려서 또 다른 먹잇감을 향해 돌진헌다. 사회적 약자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자본가에게 매수된 반동정치세력의 말에 현혹되어 무기를 들고 같은 처지으 사회적 약자가 무기를 들구 기다리고 있는 전쟁터로 향헌다. 6.25북남내전 때도 그랬고, 월남에서 벌어졌던 미제국주의 침략전쟁 때도 외화벌이라는 명목으로 더러운 용병이 되어 비엣남 인민들을 유린혔다.

 

설이 방금 지났다. 지금 비엣남 중부 다낭, 호이안, 후에 인근 여러 마을에서는 마을의 거의 모든 집들이 제사를 지내느라구 분주허다. 저승사자의 방문을 받은 날이 같기 때문이다. 1968년 설연휴때 베트콩과 베트남인민해방군은 총공세를 펼쳤다, 사이공 몇몇 관공서들은 이때 잠시 점령당하기도 했고, 당연히 인명두 많이 살상돠었다. 그때문이었을까 파병 한국군의 대 비엣남인민 살상작전이 이때부터 1년간 대부분 벌어졌다. 꽝남성에서 밝혀진 것으로만도 최소 646명이 학살되었다. 노인과 약자와 어린이들만 남아 있는 마을로 들어가 어린아이의 입에 총알을 퍼붓고, 산모의 배를 가르고, 여성을 강간한 후 유방과 성기를 칼로 도려냈다. 사체에 불을 붙여 태우고 파묻어서 유기허려구꺼정 했다.

50년이 지났다. 가해군인들의 그 어떠한 양심선언이나 고백, 수기도 없다. 통탄은 이럴 때 해야 헌다, 가해 당사자건 아니건 머리를 죄다 풀구 꿇고 앉아서 바닥에 이마를 짓이기며 사죄버텀 헐일이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럴 때 나서라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기밀해제된 문서들만 조사해도 학살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병사들과 학살명령-계통은 알아낼 수 있다. 그들이 받은 훈장과 상금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 수령하고 있을 해당연금 등에 관해서는 그 지위를 박탈해야 허구, 수령금은 단 일원도 빠짐없이 빼앗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생명활동을 멈추게 하는 행위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국격은 그런 곳에서 단단해지고 힘을 얻는 것이다. 국가대항전에서 금메달 몇 개 딴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일 어려운 게 어디 있겟는가?

 

지금 현재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혀야 할까? 민간단체에서 조직헌 순례단에 참가해서 마을을 직접 찾는 방법외에도 사죄와 성찰의 시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잇다. 가해자에게 항의편지를 쓰는 것, 국가에 올바른 처리를 촉구하는 편지를 쓰는 것 버텀 시작헌다! 힘든가? 두려운가? 아니면 성가신가? 그럼... 이런 방법도 있다. 청주 지역엔 많은 비엣남이주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지역 곳곳에서 어렵고 힘든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이 피해입지 않구 법에 정당한 혜택을 받으면 생활헐 수 잇도록 관공서와 공장, 식당 등 업체들을 각성시키고 자극허는 방법도 수없이 많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적법한 사업체를 찾아 포상허는 방법도 있다. 식당이라면 더 좋다, 자주 먹으러 가면 된다, 그 이유를 분명허게 밝히고서. 공장이라면? 그 공장의 제품을 사서 사용허면 된다, 주변에두 권해야 허구.

 

마쳐야 헐 시간. 인권연대 에 바란다. 파병부대가 부산항에서 첫 항해를 시작헌 날이 1964911일이다. 꽝남성으 비극이 이날 시작되었다. 이날을 꽝남성인민학살의 날로 정하자. 우리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날로, 생명이기를 포기혓던 날로 가심에 새기자. 노란 종이로 평화를 상징하는 꽃 호아쓰를 만들자. 많이 부족허지만 이날 하루만이라도 종이꽃 호아쓰를 가심에 달구 진종일 힘껏 외치자,

 

학살자를 처단하라!

인민의 피에 대답하라!

제노사이드를 잊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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