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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60호> 보시(布施), 집착함 없이 베품_이영희(회원, 원영한의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3.

 

지인이 있다. 알고 지낸지는 1년 정도 되었다.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횟수로 치자면 다섯 번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정이 많이 들었던 분이다. 종종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분으로부터 어느 날 메시지를 받았다.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며 청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한다 했다. 떠나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지 했던 날, 그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서려니 남편은 마음이 쓰였나 약속장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따라나섰다.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몇 번을 사양하다가 차에 올랐다. 돌아올 때는 택시 타고 오면 되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 두었다.

 

약속한 시간에는 나 말고도 한 분이 더 있었다. 초면이긴 했지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넷 공간에서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겠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지 자꾸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났을까, 핸드폰 벨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이제껏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나에게 그 시간은 아쉬울 만큼 빨리 흘러갔지만, 차 안에서 기약 없이 나를 기다리던 남편에겐 더디게만 흐르는 시간이었을 게다. 밖을 나서니 저만치서 차가 보인다.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비가 많이 와서 같이 가려고 기다렸는데, 뭔 인사가 그렇게 기노?” 하며 시작된 남편의 잔소리가 멈출 줄을 모른다. 남편에게 미안했던 마음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남편이 한 말, “하긴... 내가 좋아서 기다린 건데, 너한테 화낼 일이 아니지...” 그렇게 우리 둘은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문득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 현관문 앞에 둘째아이 점퍼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길래 아이 방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딸아이 방은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방 좀 정리하지할라치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던 아이다. 마음이 불편한 날엔 대충 치우고 나오는데 아이는 한 번씩 그것에 대해서 불평을 하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점퍼를 찾는 아이에게 방에 갖다 두었다 했더니 화를 내는 것이다. 세탁소에 맡기려고 했던 건데 왜 그랬냐며 엄마는 맨날 내 방 뒤지고, 막 치우고...” 하는 게 아닌가. 바쁜가 보구나, 일이 많은가 보구나 하며 방을 치웠던 건 <아이를 위해서>였다. “내가 언제 네 방을 뒤졌다는 거니?” 나도 같이 화를 내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아이는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엄마보기 창피해 그랬던 건데, 말이 이상하게 나왔어요..” 하며 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한동안 풀리지 않았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아이 방을 정리했던 걸까, 정말 아이를 위해서였을까? ‘방 정리 해줘서 고마워요란 인사를 아이에게서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불교에는 6가지 수행지침이 있다. 그 중 첫째 덕목이 보시(布施). 보시는 마음에 집착하는 것 없이 베푸는 것을 말한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보시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거래>.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 이제는 마음을 바꿔야겠다. 무엇을 할 때는 그냥 내가 좋아서 하기로 하자. 그것이 전부다. 혹시라도 상대가 기뻐해 준다면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는 내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준 고마운 분이니까. 혹시라도 화를 낸다면 당신 맘 상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렇게 인사하면 된다. 나 좋자고 한 일에 상대 마음이 상했다면 그건 정말 미안한 일이다. 이렇게 마음을 쓰는 것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매 순간 행복해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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