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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58호> 태어남과 죽음은 한자리, 삶이 주는 보물상자_이영희(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3.

 

 

밤새 눈이 내렸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뚝 떨어진다. 아이가 떠나던 날도 세상은 눈으로 가득했다. 낯설고 서러웠던 아침. 오늘이 바로 그 날이구나.

 

죽음은 그랬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모든 걸 가져가 버렸다. 지독한 외로움과 맞서며 한참을 방황하고서야 나는 제자리를 찾아왔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면 어떨까. 떠나는 이는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남은 이는 부재(不在)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하여 시작한 일이 올해로 3년째다.

 

12월이면 남편과 함께 하는 일이 있다. 아이들 이름 첫 글자를 딴 <선아창재 보물상자>를 작성하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유언장을 써보자했던 것이 빌미가 되었다. 말은 쉬웠지만 무척 힘든 일이었다. 죽음을 직시한다는 건 내게는 공포에 가까웠고, 수용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걸러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내 스타일로 봐서는 열 장 스무 장도 거뜬히 넘길 테니까. 며칠을 쓰고 지우길 반복하니 A4 용지 한 장 분량이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랬다. 뭘 내세울 만큼 잘 살지도 못했으면서 난 아이들에게 늘 장황설만 늘어놓았구나, 정작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뒷전으로 미루고서. 돌아보니 산다는 건 참 단순하고 별 거 없었다. 괴로움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고 기쁨에 달떴던 시간도 이내 사그라들었다. 인생은 그렇게 평균점을 찾아서 흘러갔던 것이다. 내 안의 평온함을 찾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흔들렸을 뿐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나무의 한살이처럼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것, 그것이 나고 죽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유언장을 파일에 저장하고 나니 앞으로의 삶이 덤처럼 느껴졌다.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해서 함께 고민을 했고, 장례절차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사망 시 꼭 연락해야 할 사람도 추려 보았는데 남편이나 나나 다섯 명이 안 되었다. 인간관계가 협소해서가 아니다. 꼭 함께 하고 싶은 사람만 부르자 하니 그리 된 거다. 앞으로 있을 경조사에는 모두 이 방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제사문제도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었다. 남편은 운영하고 있는 업체를 정리하는 방법과 이것을 도와줄 지인의 연락처, 금융관련 일체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자식에게 빚은 물려주지 말자가 우리 부부의 신조라서 돈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꼼꼼히 살폈다. 이참에 막연하기만 했던 노후에 대한 걱정도 풀어보고 현실적인 대안도 찾아보았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내용들도 문서로 작성하여 보물상자에 함께 넣어 두었다. 요즘은 아이들과의 추억을 정리중이다.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던 박스 안에서는 탯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깎아준 손톱, 예쁘게 그린 엄마, ‘사랑해요를 남발한 편지, 결혼기념일에 만들어 준 목걸이까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보는 내내 울다가 웃기를 반복한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정말 아름다웠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참 어리석구나 싶었다.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며 한 해 두 해 보물상자의 내용을 보강하다 보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이제 나는 행복해지는 일만 남았다. 그것도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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