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일본만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즐겨 보는데, 그중 단연 최고는 「드래곤볼」과 「슬램덩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두 만화를 최고로 꼽는 사람은 저 혼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소년점프」라는 주간 만화잡지에 연재되었는데, 일본만화는 이때가 최고 전성기였습니다. 이 두 작품이 동시에 연재되던 때 소년점프의 최고 발행부수는 650만부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1년 치를 다 합한 것이 아니라 주간 발행부수가 그랬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출판 환경도 달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선 1만 권을 넘으면 나름 많이 팔린 책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당시 소년점프에는 인기 있는 만화가 갖춰야 할 3대 원칙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우정, 노력 그리고 승리”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도 이 세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소년점프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비난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선정적인 내용은 지금도 여전하지만(남성 입장에선 다행스러움^^), 1980년대부터 우정, 노력, 승리를 표어로 정립하면서 이미지도 개선하고 교훈적인 메시지도 담아 업계 최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소년점프는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고, 그 영향을 알게 모르게 우리도 많이 받았습니다.
곧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할 날이 다가오는데, 우리 사회에 정치를 혐오하는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여러분이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는 때가 언제인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바로 정치인들이 우정(동료애)과 노력 없이 승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치가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기본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동료 정치인에 대한 우정도 안 보이고(그럼에도 연고주의는 여전하고), 평소에 실력을 갈고닦으며 노력하기 보단 꼼수나 부리려 하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주인공이 동료를 모아 우정을 쌓고 부단히 노력하여 승리하기는 하지만, 악당(라이벌)도 주인공 못지않게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어떤 만화가 인기를 얻느냐 못 얻느냐는 사실 주인공보단 악당이 얼마나 매력적이냐에 달려있습니다.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의 인기는, 피콜로, 베지터, 프리더란 악당이 등장하면서부터 급상승했고,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북산고교 농구팀도 모두 매력적인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연히 매력적이라 그 자체로는 인기 만화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칼 한 번 쓰~윽 휘둘러서 적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서 승리한다면 그게 재미가 있겠습니까? 주인공이 어떻게 그런 내공을 쌓게 되었는지 노력하는 과정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주인공과 싸우는 라이벌의 노력과 명분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라이벌의 노력과 명분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 채 주인공의 승리에 기뻐한다면 그것은 ‘약자 괴롭히기’에 불과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일방적인 폭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진보가 시원찮은 이유는 진보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반대편에 있는 보수가 시원찮기 때문입니다. 진보/보수는 어차피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한쪽이 꼴통이면 반대쪽도 꼴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세력과 싸워 이긴들 진흙탕에서 같이 뒹구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훌륭한 대통령을 얻고 싶으면 맞은편에 있는 정적(政敵)도 훌륭하게 키워야 합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상대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으론 결코 훌륭한 대통령을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 정치가 혼란스럽고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삶의 기본적인 원칙들이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고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정과 노력으로 승리하여 대통령이 탄생되는 만화 같은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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