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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82호> 친절한 미소 띤 차별_이재헌(청년정당 우리미래)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3.

 

 

안녕하세요. <살며 사랑하며>에 글을 쓰게 된 청년정당 우리미래 이재헌입니다. 인권단체 <> 회원님들과 일상의 경험을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사실 조금 부담되지만 이 글이 여러분들과 소통하는 작은 기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난 1, 휠체어를 타는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준비는 티켓 예약부터 쉽지 않았다. 전동휠체어는 기내 반입이 안 되고 기내용 휠체어를 예약해야했다. 수하물로 휠체어를 보내기 위해 배터리 형식과 탈부착 유무를 신고했다.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체크인 할 때 언급되지 않았던 배터리 전력 제한에 걸렸다. 전동휠체어 배터리 전력 규정은 350w까지 이지만 친구 배터리는 450w였다.

이전 통화에서 배터리전력 제한은 말씀 없었는데요. 우리 탑승 못하나요?”

탑승거부 할까 겁이 났다. 직원은 우리보다 더 당황한 얼굴로 안내했다.

승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본사에 연락해보겠습니다.”

직원은 처음 겪는 상황인 듯 전화로 본사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물었다.

승객님, 그냥 탑승하셔도 됩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직원은 친절히 사과했다.

그럼 왜 제한이 있는 거죠? 돌아올 때도 괜찮은 것 맞죠?”

(돌아올 때도 담당 직원이 본사로 다시 전화를 걸었고 승인을 꽤 기다려야 했다.)

문제는 계속 됐다. “승객님, 배터리를 분리할 수 있나요?”

여기 커버를 열고 케이블을 빼면 된데요. 근데 혹시 드라이버 있으세요?”

승강장 안에는 드라이버가 들어올 수 없어요. 여기 3층 사무실에 있습니다.”

그냥 전원만 끄고 탑승하는 것은 안 될까요?” 내가 물었다.

잠시 만요. (전화 중) 그럼 전원만 끄고 탑승하시죠.”

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탑승을 못할까봐 조마조마 하다 보니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왔다.

우리는 몇 번의 난관을 넘어서 탑승했다. 좌석에 막 앉아 긴장을 풀고 있을 때 승무원이 우리를 찾아왔다.

승객님, 죄송합니다. 휠체어를 수화물 칸에 넣기 위해 접어야 하는데 손상이 갈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수하물 칸 높이가 낮아서 휠체어를 접어야 했다.

? 그래요? 도착하면 원상복구 되나요?” 라고 물었다.

제주 공항에서 직원이 복구하다가 손상이 갈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지금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죠. 일단 그렇게 하죠.”

승무원은 휠체어를 접는 영상을 보여주고 내 핸드폰으로 전송했다. 승무원은 혹시나 모른다며 영상을 받아가라고 걱정해주었다. 친절히.

휠체어는 도착해서 바로 준비돼 있지 않았다. 우리는 승객들이 기다리는 대합실 한 복판에서 직원이 휠체어를 조립하는 것을 20여 분 동안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을 힐긋힐긋 바라봤다. 접었던 휠체어 핸들 팔을 다시 고정했지만 미세하게 바뀐 위치 때문에 친구는 어색해했다.

우리가 겪었던 상황은 테러방지나 안전을 이유로 소수자에게 가한 차별이었다. 공항에서 만났던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우리는 매우 불편했다. 몇 번이나 탑승하지 못할까봐 가슴 졸였다. 우리는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실효성이 있는지도 모르는 매뉴얼을 눈감아준 항공사의 큰 배려덕분에 탑승할 수 있었다.

사회 시스템은 친절한 얼굴로 바뀌고 있지만, 불평등은 여전하다. 비행기를 탑승했던 많은 휠체어 이용자들의 분노한 이야기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음 여행 때는 항공사의 값싼 배려가 아닌 마땅한 권리로서 보장받아 편안한 여행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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