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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84호> 미투(#MeToo) : 미안합니다. 함께 투쟁합시다._이재헌(청년정당 우리미래)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당신은 미투(#MeToo)로부터 자유로운가? 나는 아니다. 연애하면서 내 감정만 앞세우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상대방이 느낄 불편함과 두려움을 철저히 내 기준에서 판단했다. 연인과 스킨십이 하고 싶을 때, 상대가 거절해도 몇 차례 요구했던 적이 있다. 강요만 하지 않으면 그것이 대화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싫으면 계속 거절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상대방은 그 때 내 태도가 너무 불편했지만,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까봐 두려워서 말 못했다고 고백했다.

 

난 집안에서도 장남이라는 특권을 향유했다.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받는 차별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침묵했다.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여동생이 어린 시절 쌓인 서러움을 토로했다. 오빠인 나는 항상 칭찬을 받았지만, 여동생은 홀로 할머니 병간호를 하던 때조차도 힘들어 한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주변 여성들의 고백이 있기 전까지 난 좋은 아들, 좋은 오빠, 그리고 좋은 남자친구라고 착각했다.

 

4년 전, 죽을 만큼 괴로울 때가 있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한 달 동안의 일이다. 지도교수인 최교수는 입학 전부터 나에게 연구비 지원을 약속했다. 천문학 박사과정 이력을 보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친절했던 첫인상은 연구실에 들어가면서 깨졌다. ‘이따위로 하려고 남편 설거지 시키고 학교 왔냐?’ 최교수는 수시로 학생들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술 마시고 밤에 전화해서 내게 한말도 기억에 남는다. ‘야이 x새끼야, 왜 시키는 대로 안 해?’ 학생들은 최교수의 이런 언행에 익숙해 있었다. 난 화가 났고, 또 무서웠다. 내가 학교를 그만 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보였다. 그 때 한 선배의 조언으로 다른 교수와 면담하며 최교수의 언행을 폭로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이랬다.

순수과학 쪽에 있어서 이쪽 분야 분위기에 잘 적응 못하는구만.’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 내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난 자퇴하지 않고 지도교수를 바꿨지만 졸업은 못했다.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도망가지 않고 폭로해봤다는 것이다.

 

미투 이야기들은 4년 전 내가 경험한 것과 닮은 점이 있다. 조직의 권력자에게 강요를 당했다는 점, 그런 폭력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 조직 내에 많은 방관자나 침묵자가 있다는 점, 그리고 누군가 폭로하면 예민한 사람의 일탈로 비춰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나에게 어떤 피해가 올지 몰라서 두렵던 감정이 생각난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얼마나 아팠을까. 예상하지 못할 보복을 당할까봐 얼마나 겁이 날까. 남성인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미투는 수직적 권력에 의한 내 상처도 건드리고 있다. 미투가 꿈꾸는 세상을 지지하는 이유다.

 

권력 앞에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며 먼저 아픈 반성을 한다. 그리고 동참하게 된다. 미투가 지향하는 것은 수직적인 남성중심사회를 평등한 사회로 바꾸는 것이다. 가정, 학교, 그리고 직장에서 대체로 나도 약자였다. 갈굼과 언어폭력 등의 수직적 직장문화에 혐오를 느끼며 현재 취직하지 않고 백수로 살고 있다. 헌법이나 교과서에서만 본 적 있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이제 우리 일상에서 만들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성별이 달라도 함께 연대하고 투쟁할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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