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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85호> 우리 곁의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_이재헌(우리미래)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5년 전, 낯선 도시 청주로 왔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많은 스트레스로 우울할 때 집에서 가까운 구룡산을 자주 걸었다. 오솔길을 오르다보면 울퉁불퉁하지만 부드러운 숲길의 촉감이 느껴져 발바닥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딱딱하고 평평한 아스팔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이다. 밤에 조용히 걷다보면 1~2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 공부 스트레스, 그리고 지도교수의 폭언에 지친 마음은 안정이 되곤 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은 구룡산이 더 고요해진다. 자동차 엔진소리는 아득해지고 숲길에서 자주 들리던 새소리나 산짐승 발자국 소리도 사라진다. 작은 숲에서 느낄 수 있는 구룡산의 안정감과 포근함이 좋았다. 사막 같은 도시 속에서 구룡산은 나에게 오아시스였다.

 

우리 곁의 자연은 예전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물이 오염되어 생수를 사먹는다. 미세먼지로 공기가 오염되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불편함보다 깨끗한 강물과 맑은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이 더 슬프다. 물과 공기처럼 도시숲도 현재 모습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내년부터 많은 도시숲과 공원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도시공원 중에서 사유지의 규제가 풀리고 개발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청주시는 도시공원을 지키는데 필요한 예산이 없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도시공원 문제를 설명하는 기사들은 숲의 기능과 예산문제를 들먹인다. 일부에서는 땅주인의 재산권 보호를 주장한다. 도시녹지를 확대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던 한범덕 청주시장은 517, 결국 구룡산 마저도 민간공원 개발사업 공고를 발표했다.

 

나는 3년 전 오대산에서 트리클라이밍을 배우며 나무와 숲을 만났다. 나무 위에 밧줄을 걸고 올라가면 그 곳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들을 보게 된다. 습기 찬 나무껍질 위의 이끼들, 나뭇잎을 갈아먹는 무당벌레와 애벌레들 그리고 곤충들을 몰아내며 나무와 공생하는 개미들. 숲 속 나무 한 그루에는 백여 종의 생명들이 함께 살고 있다. 숲에는 이러한 나무뿐만 아니라 무수한 아름다운 야생초와 청소부 역할을 하는 균류와 사람들을 피해 뛰어다니는 산짐승과 빗물이 모여 흐르는 계곡과 시원한 바람도 있다. 숲에서 생명들이 서로 돕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모습은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알려 주었다.

 

우리도 다른 생명들처럼 숲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숲에서 열매를 따 먹고, 사냥을 하고, 나무 위로 위험을 피하고, 동굴에서 잠을 잤다. 약 만 년 전부터는 숲을 개간하고 작물을 심으며 살아왔다. 우리 몸과 정신은 숲에서 살아 온 수백만 년의 진화를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1~200년 사이에 숲에서 멀어지고 낯선 도시 생활을 하며 시작됐다. 내가 전공한 산림치유학에서는 콘크리트 빌딩이 우울증을 심화시키고, 딱딱한 보도블럭이 청년의 관절마저 쉽게 피로하고 아프게 만든다고 한다. 숲을 잊지 못해서 향수병으로 아파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 도시숲이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뛰어 놀 때도 마스크를 쓴다. 먼 미래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자녀들이 깨끗한 공기와 청명한 하늘색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구룡산 마저도 민간공원 개발사업 공고가 발표됐다. 숲이 사라진 도시에서 생존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살아 숨쉬기는 힘들다. 일상에서 계절 변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경외감을 느끼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숲이 사라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이 걸린다. 도시숲을 파괴하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일상에서 숲이 사라지면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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