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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88호> 한국식? 같은 소리하네_이재헌(청년정당 우리미래)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당신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가로수의 큰 가지가 당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마른하늘에 번개 맞기처럼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주변의 가로수들은 심한 가지치기나 수간에 충전재를 채워 넣은 처치(공동충전) 때문에 상당수 병들어 있다. 실제로 2015년 서울 사직공원에서 큰 가지가 떨어져 보행자가 다쳤다. 그리고 1700만원의 국가 배상 판결이 나왔다.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나무관리 일을 하는 나와 내 친구들은 나무외관을 보고 건강을 진단하는 전문가인 에릭(Eric Folmer, 미국 캘리포니아주 Merritt 대학 수목재배학 교수)을 초대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서울혁신파크 가로수들의 건강을 살피고 적절한 가지치기에 필요한 진단을 위해서다. 혁신파크 시설과에서 관리하고 있던 피아노숲은 역시나 건강한 나무들이 드물고 죽어가거나 병든 나무들이 다수였다. 에릭은 사람들의 안전과 주변 나무들의 성장을 위해 제거해야할 나무를 선정했다. 그 중에는 겉보기엔 잎이 무성한 10m 크기의 일본목련도 있었다. 잎이 무성하다고 나무가 건강한 것이 아니다. 큰 상처 입은 나무는 그 부위에 어린 가지를 급히 키워서 살아나려고 발버둥 친다. 몇 년 동안 죽어가면서 말이다.

 

쉬는 날에 에릭과 창덕궁을 방문했다. 그 곳에는 수 백 년 된 문화재급 나무들이 있었다. 내 친구는 에릭에게 그 나무들이 언제 심어 졌고 얼마나 귀한지 안내판을 보며 통역했다. ‘귀하다는 그 나무들은 다수가 머리가 잘려있거나(Topping) 몸통에 실리콘 같은 화학합성수지재료 충전재가 나무 수피 모양으로 교묘하게 채워져 있었다(공동충전). 에릭은 그 기괴한 치료를 받은 나무들의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40년 전 미국에서도 공동충전을 했지만 지금은 주(state) 마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 공동충전은 상처에 습기를 머금게 해. 나무가 아니라 오히려 세균들을 보호해주지.” 아이러니 하게도 관리 받지 않는 바깥 숲에 심어진 보통나무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3년 전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나무병원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이규하 박사는 공동충전 등 기존 나무 관리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날을 세워 비판했었다. 강연이 끝나자 한 연구자가 의견을 냈다. “그것은 한국스타일입니다. 한국식 전정이에요.” 유신헌법이 한국식 민주주의다.’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유머센스가 좋은 연구자가 아닌가. 졸고 있던 나는 그 연구자의 유머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 나무는 국적이 다르면 생리반응도 다르구나.’ 이들이 비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수익을 내기위해 관행을 고집하는지 조금 헷갈린다.

 

우리는 숲에서 품위 있게 살아가던 나무를 우리 공간으로 들여왔다. 이제 우리는 도시에서 나무가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해하고 돌봐야할 책임이 있다. 어렵지 않다. 어린 나무에서부터 가로수로 적합하도록 가지치기하면 된다. 그리고 장소에 맞는 나무를 심으면 된다. 가지치기나 위험목 제거는 내 친구들처럼 수목관리전문 교육을 받은 아보리스트를 부르면 된다. 나무와 사람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거리와 공원을 상상해 본다. 그럼 우리 회사 <시소> 팀에 나무관리 일도 많아지면 더 좋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보리스트와 가로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KBS 스페셜 서울나무 파리나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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