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은 귀싸대기를 잘 때렸다. 자습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아이들에게 그는 늘 매서운 체벌을 가했고 교실엔 공포가 감돌았다. 인상적인 점은 ‘질서를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우리들 대부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는 것. 그에게 귀싸대기를 맞을 일이 없는 아이들은 대개 착실한 학생들이었으므로, 그의 말을 잘 듣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사이의 경계가 꽤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였기에 그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반장이 친구들을 체벌하는 일도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똑똑하고 모범적인 여학생 J를 투표 없이 반장으로 임명한 담임은 교실을 비울 때마다 J의 손에 30cm 자를 들려 줬다. 떠드는 애를 잡아내 때리라는 것이다. 처음엔 웃으며 손바닥을 탁 건드리는 정도였던 J의 매질은 점차 혹독해져 갔고 아이들을 때리는 표정엔 사명감까지 엿보였다. J에게 맞고서 순전히 물리적인 아픔 때문에 우는 아이들이 생길 정도로 J는 힘껏 체벌의 책임을 다했다. “J야, 애들 때리는 거 너도 싫지?”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J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우리 반을 조용히 시켜야 하니까.” 이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건, 그 무렵 내게서 J에 대한 얘기를 듣고 경악하시는 부모님 표정을 보고서야 나도 비로소 ‘아, 이게 그 정도로 잘못된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나의 정신 역시 담임이 행사하는 권위에 상당히 영향 받고 있었다는 것.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는 그의 저서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서 이런 실험을 소개한다. 예일대학의 스탠리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을 실험 참가자로 선발해 기억과 학습에 대한 실험이라고 안내하고는 교사 역할을 맡게 했다.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는 학생 역할의 공모자에게 교사 역할의 참가자가 단어를 묻고 그가 오답을 말할 때마다 강도를 높여 가며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런 충격도 가해지지 않았지만 학생 역할의 공모자는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운 모습을 연기했고, 이에 실험 참가자가 난감해할 때마다 진행자는 실험을 계속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참가자의 65%나 되는 사람들이 최대 강도에 해당하는 450볼트 버튼까지 눌렀다. 이후 프랑스에서 수행된 유사한 실험에서도 참가자의 70% 이상이 최고 강도의 버튼을 눌렀으며, 피해자가 실신을 했는데도 (물론 실신하는 연기를 한 것이지만) 버튼을 누르는 경우조차 있었다. 실험 후 참가자들의 성격을 분석했더니, ‘양심적’이고 ‘상냥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일수록 피해자에게 가한 전기 충격의 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로랑 베그는,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들’일수록 권위에 쉽게 복종하고 불복종을 꺼렸다고 분석한다.
뼈아프게 기억할 일들이 유난히 많은 4월, 밀그램의 실험과 오래전 그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이 더더욱 생각난다. 고백건대 J 못지않게 성실하고 반듯한 학생이었던 내가, 잘못된 권위 앞에서 분노하고 소신껏 행동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데에는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다지 용감하지 못할 때가 많음을 가슴 아프게 고백한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스스로에게 던지고 또 던지는 질문. 내게 주어진 역할을 건실히 재깍재깍 해내는 동안, 누군가의 불의에 가담하거나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이 멈추는 곳에서 악(惡)이 곰팡이처럼 번식하고 힘없는 이들이 신음해야 했음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으니, 질문은 날마다 계속돼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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