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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86호>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우린_박현경(교사)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일요일 아침.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햇살이 우리 방에 쏟아진다. 일주일을 달려온 우리 몸은 햇살에 녹는다. 내 옆에 누운 그대의 잠든 얼굴을 본다. 그 옆에 누운 왕순이의 갸르릉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나란히 아침볕을 쬐기까지 우린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서로에게로 왔는가.

 

그대는 그해 여름 참 많이 달렸다.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날마다 짧게는 여덟 시간, 길게는 열한 시간 동안 주로 곱창볶음이나 찜닭을 싣고서 원룸촌 골목골목을 달렸다. 야식집 왕십리 순대곱창에서 일한 지 일 년쯤 돼 가고 있었다. 야식을 주문하는 이들은 대개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대도 일을 마치면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두 다리로 달렸다. 운동 삼아 매일 사십여 분씩 뛰는 길, 거기에도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달리다 올려다보면 연둣빛으로 반짝이던 가로수 잎들. 거창한 계획은 없었지만 하루하루 즐거웠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 그대의 삶 속으로 어느 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 조그만 고양이는 왕십리 순대곱창가게 앞 오토바이들을 세워 놓는 곳에서 며칠째 눈에 띄었다. 같이 일하던 형, 동생들과 함께 그대도 그 고양이를 봤다. 빼빼 마른 몸에 꼬리만 커다래서 꼭 족제비 같았다. 사료를 가져다 바닥에 놓아 줘 봤지만 동네 고양이들 등쌀에 통 먹질 못했다. 그 족제비고양이가 먹이에 다가설라치면 덩치 큰 길고양이들이 두들겨 패며 쫓아냈고 그때마다 족제비고양이는 달려서 도망쳤다. 그대가 손바닥에 사료를 놓고 기다리니 조심조심 다가왔다. 다른 길고양이들이 꺼리는, 사람 손 위의 먹이가 그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몫이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그대를 졸졸 따랐다. 그냥 길에 두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서지만 않았어도 그 아이를 집에까지 데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대는 그 누구의 자유도 해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왕순이를 집에 데려오는 것은 자유를 해치는 일이라기보다는 목숨을 살리는 일이었다. ‘왕순이는 족제비고양이에게 그대가 붙여 준 이름이다. ‘왕십리’, ‘순대곱창’.

 

그 무렵 나는 먼 도시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교사로서 일하는 이외의 대부분 시간 동안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또 물으며 책 속 활자들의 숲을 파고들곤 했다. 곱창볶음도 찜닭도 먹지 않았고 오토바이를 타는 일도 없었다. 학교 일이 보람 있었지만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지금 이곳의 햇살이 찬란한 걸 알았지만 다른 어딘가에 있을 더 숭고한 햇살을 놓칠까 봐 두려웠다. 이번 학년도가 지나면 봉쇄 수녀원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쾌활하고 씩씩했지만 하루하루가 긴 달리기처럼 버겁게 느껴지곤 했다.

 

문득 깨어 보니 일요일 아침. 칠 년이 지나 있고 우린 가족이다.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햇살이 우리 방에 쏟아지고, 일평생을 달려 서로를 발견한 우린 함께 햇살에 녹는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건, 지금 이 햇살에 기쁘게 녹으며 함께 푹 쉬는 것보다 더 숭고한 일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제 막 눈을 뜨는 그대 얼굴을 보며, 왕순이가 나지막이 코 고는 소릴 들으며, 묻는다,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우린 서로에게로 왔는가. 세상의 뭇 존재는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서로를 발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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