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홍콩인이다. 중국인이 아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중인 홍콩 출신 대학생 후이는 같은 지역 중국유학생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그가 기고한 칼럼 때문이다. 후이는 출신국에 대한 질문에 홍콩이라고 대답했지만 중국인들은 ‘홍콩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화내며 억압했다. 이 배경을 설명한 후이의 칼럼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격한 반감을 표했다. 일부는 중국에 대한 무시라며 그를 처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중국 유학생들이 치기 어려 보이는가? 사회주의에 세뇌된 국수주의자들로 보이는가? 우리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애국심이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 국가의 이익을 우선 선택하는 것. 국가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군사정권 때 내용이 아니다. 2015년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에서 연구자들의 윤리교육을 위해 만든 온라인 강의 내용의 일부다. 어느 새 우리에게 애국심의 의미는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가주의에 빠져서 개인을 협박하는 중국유학생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몇 년 사이 태극기 알레르기가 생겼다. 거리에 나풀거리는 태극기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호흡이 불규칙해진다. 특히 인권집회나 선거법 개혁 시위를 위해 광화문이나 서울광장에 가면 이런 증상이 심해진다. 태극기를 들던 그분들은 광장에서는 목청이 터져라 애국을 소리친다. ‘여당이 나라를 팔아먹는다!’, ‘빨갱이가 나라를 망친다!’.
애국심 타령은 정치 이슈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삼성 같은 대기업의 비리나 문제가 생긴 제품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옹호하는 댓글이 달린다. 몇몇 ‘애국지사’들은 내수제품을 수출제품보다 질을 떨어뜨리는 민족애를 발휘하고 사내유보금을 천문학적으로 쌓아 두는 대기업을 두둔한다. 그 외에도 우리는 한국을 비판하거나 한국인의 편을 들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 또 일부 종교인들은 애국을 하자면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탄압을 조장한다. 우리와 다르다고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이 언제 애국심으로 둔갑한 것일까?
나는 나라를 망치는 청년이다. 집회에서 만난 한 어르신에 의하면 그렇다. 그는 청년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청년들이 눈만 높아지고 일을 하지 않아 큰일이라고 했다. 애국하려면 국가를 위해 노동하고 출산해야 한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가 아닌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자는 분들인데, 그분들이 알고 있는 자유는 내가 아는 자유와 좀 다른 것 같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선택할 자유, 결혼할 자유, 육아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알바하며 한 달에 10일 이상 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 개인 시간이 많아 사람도 만나고 책도 보고 산책을 하며 일상을 보낸다. 납세도 열심히 하고 법을 준수하며 정직하게, 소신껏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내 삶이 정말 나라를 망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나는 희망한다. 여자든 남자든, 장애가 있든 없든, 성정체성이 어떻든,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국적과 인종이 다르더라도 평등하게 살며 한 명의 개인이 그 사회의 목적인 국가의 국민이고 싶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모한다면 없던 애국심도 생길 터다. 그때가 되면 나도 애국심이 넘쳐서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흔들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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