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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85호> 하복 윗도리에게 사과를_박현경(교사)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어젯밤에 집에 가서 하복을 다시 입어 보았다. 그래, 생각했던 만큼 나쁘지는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히려 하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하복 윗도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벌써 오래전이 되어 버린 어느 날 오후에 나랑 같이 먼 길을 걸어가서 그 하복을 사 왔던 엄마에게도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었다.”

 

20029, 열아홉 살 박현경이 썼던 이 글을, 20195, 서른여섯 살 박현경이 다시 읽는다. 옛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연필 손글씨. 17년 전 고3 교실 어느 쉬는 시간에 이 문장들을 적으며 시큰했던 코허리 느낌도 생생히 떠오른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IMF 사태의 여파였다. 교복 값은 큰 부담이었고 그런 우리 가족에게 시() 자원봉사센터에서 파는 재활용 교복은 참 고마운 존재였다. 새것은 아니어도 꽤 쓸 만한 동복 교복을 상하의 도합 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사 입고 입학을 했다. 두어 달 후 하복을 마련할 시기가 돼서도 엄마와 나는 자원봉사센터에 갔다. 윗도리 천오백 원, 치마 삼천 원에 재활용 하복을 사서 엄마랑 도란대며 걸어오는 길,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 기분이 흔들린 건 바로 다음 날 아침, 교문 앞에서 만난 선배 언니가 날 보고 , 한복 입었네?”라며 깔깔깔 웃은 때부터였다. 자원봉사센터에서 판매하는 하복 윗도리는 당시 유행하던 늘씬한 핏(fit)의 유명 브랜드 제품들과 달리 펑퍼짐한 모양이었던 것. 그런 모양을 사 입은 게 경제적 이유 때문만 아니었어도 가볍게 잊을 수 있었을 그 언니의 농담이 당시 내 마음속엔 두고두고 남았고, 나는 내 하복 윗도리가 부끄러워졌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새하얀 원단에 세련되고 허리가 잘록한 상의를 입었으며, 내가 입은 것과 같은 푸르스름한 형광색 원단에 촌스럽고 벙벙한 모양을 입은 극소수의 아이들은 없는 집애들이란 게 내 눈에 선명히 보였다.

그래도 그런 생각 눌러 가며 3년 간 알뜰히 잘 입고 다녔는데, 졸업 앨범 사진 촬영을 앞두고선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그 무렵 나를 괴롭히던 외모 콤플렉스까지 가세해, 하복을 입은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나 촌스럽고 이상해 보였다. ‘하얗고 날씬한하복 윗도리를 친구한테서 잠깐 빌려 입고 사진을 찍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 못 견디게 수치스런 일로 여겨질 정도로 나는 예민해져 있었다. 촬영이 임박한 어느 날, 빈티 나는 하복 윗도리가 밉고 지겹고 찢어 버리고 싶단 생각 속에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 엄마 앞에서 짜증을 내비쳤던 기억이 난다. 하복 입은 네 모습 예쁘기만 하다며 엄마가 나를 위로해 주시던 기억도…….

 

그런 일이 있고 이틀 후 위의 일기를 썼다. 그리고 나의 그 정든 하복 윗도리를 입고서 졸업 앨범 사진을 찍었다. 지금 보면 그 사진 속 나는 촌스럽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내가 입은 윗도리와 다른 친구들이 입은 윗도리가 별반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그 사진 속 나를 한번 꼭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제는 교사로서 종일 고3 교실과 복도를 오가며, 이 학생들 틈에서 그 시절의 나를 마주칠 것만 같은 느낌에 문득문득 사로잡히곤 한다. 요즘처럼 학생들이 하복을 입기 시작할 무렵이면 더욱더……. 그 시절의 나와 똑같진 않더라도 제 나름의 이유로 때론 울고 싶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추스르곤 할 이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무 말 없이 그저 꼭 안아 주고 싶은 맘에 또 코허리가 시큰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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