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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90호> 힘_박현경(교사)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2. 11.

 

후두둑, 후두두둑. 빗방울을 흩뿌리는 하늘이 야속했다. 우산 없이 집을 나선 아침. 여느 때처럼 등에는 백팩, 어깨엔 도시락 가방을 메고 걷는 출근길.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빗줄기로 변했고 나는 꼼짝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거니와, 혹시 그럴 장소가 있다 해도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가는 학교에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착할 즈음이면 머리고 옷이고 양말이고 다 흠뻑 젖어 있을 텐데, 처량한 꼴로 1교시 수업에 들어가게 됐다고 속으로 투덜대며 조금이라도 덜 젖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승용차들이 한 대 두 대 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내 모습이 더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뒤통수 너머에서 들려오는 화작 쌤!” 하는 소리. (‘화작 쌤이란 화법과 작문과목을 가르치는 나를 부르는 말이다.) 돌아보니 단발머리를 펄럭이며 저만치서 달려오는 옆 반 학생! 그 애는 우산을 쓰고 있었다. “화작 쌤! 같이 가요!” 서둘러 내게 우산을 씌워 주며 바짝 다가오던 그 친구의 스스럼없는 웃음. 나보다 한참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으니 나를 못 본 셈 치고 그냥 자기 속도대로 학교까지 갔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굳이 뒤에서 소리쳐 부르고 달려오기까지 해서 우산을 씌워 준 게 참 고마웠다. 우린 한 우산 아래 어깨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학교에 갔다. 그 친구랑 동네 얘기, 일상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제도적 틀이 정해 준 교사학생이라는 이름과 별개로 우린 그냥 편한 친구이자 이웃, 이 스산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가는 동지란 게 느껴졌다. 든든하고 행복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을 떠올릴 때면 마음속에 따끈한 힘이 솟곤 한다.

 

태풍 미탁이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다. 우산이 뒤집힐 듯한 비바람 속에서 청주교육지원청 강당에 도착했을 때 남편과 나는 이미 옷이랑 신발이 축축이 젖은 상태였다. 세월호 2000일 가을 음악회. 마음 아파하시는 분들과 함께 아파하고자 참석한 자리였지만 그토록 많이 울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산오락회’, ‘두꺼비앙상블’, ‘시노래프로젝트 블루문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가슴속 깊은 곳의 현()을 퉁겨와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모든 순서가 가슴을 울렸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참여하시는 ‘4.16합창단공연은 특히 쿵, , 평생 못 잊을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온몸과 온 마음으로 절절하고 결연하게 노래하시는 그분들에게선 그 누구도 그 어떤 권력으로도 흔들지 못할 굳센 힘이 느껴졌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이 단단하고 투명한 빛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 사이로 옆을 보니 남편 눈가에서도 눈물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중에 남편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모진 시련을 견디며 꼿꼿이 서 있는 것. 그러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것. 4.16합창단 공연을 보고 가슴이 울린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합창단원분들과 관객들이 다 같이 기념 촬영을 했다. 하도 울어 퉁퉁 붓고 벌게진 얼굴로 사진을 찍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데 4.16합창단의 일원이신, 희생 학생 어머니 한 분이 당신의 두 손으로 내 두 손을 꼭 잡아 주셨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손과 눈빛이 너무나 따뜻하고 힘이 있어 나는 또 왈칵 눈물이 났다. 더운 눈물과 함께 마음속에 따끈따끈 힘이 솟았다. 남편 손을 꼭 잡고서 사나운 비바람을 헤치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예감했다. 앞으로 두고두고 이 일을 떠올릴 때면 뜨거운 밥 한 공기 같은 힘이 솟겠구나.

 

이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필요하다. 조그만 도움, 찰나의 마주침, 설명하기 힘든 방식들로 우린 그 힘을 주고받는다. 이 차가운 세상은, 의외로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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