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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92호> 시를 들려줘서 고마워_박현경(교사)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1. 8.

 

지각시’. 지각하면 외우는 시(). 우리 반 교실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다.

 

처음 교사가 됐을 때, 반복해서 지각을 하는 학생들에게 자꾸 화가 났다. 그 학생들에게는 지각하는 습관을 안 고치면 나중에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등교 시간도 하나의 약속인데 약속을 계속 어기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등의 따분한 이야기를 격앙된 어조로 늘어놓곤 했지만, 정말로 그들의 미래가 걱정돼서 화를 낸 건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내 분노의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나의 지속적인 지도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이 행동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지각을 한다는 건 내가 무능한 교사라는 증거가 아닐까? 이러다 내 통제를 벗어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늘어나면 어쩌지?’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고 웃음이 나온다. 자기 고유의 인격과 가치관을 지닌 청소년이 교사의 꼰대스러운 말 몇 마디에 감화돼 생활을 바꾼다면 그거야말로 희한한 일이 아닐까? 더욱이, 학생들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일지는 몰라도 교사의 역할의 핵심에서는 꽤 벗어나 있지 않나? 학생들이 삶을 사랑하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그 일이 가능하게 먼저 교사 자신이 삶을 사랑하는 행복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 핵심’(에 가까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암튼, 12년 전의 나는 두려움에 쫓겨 점점 더 심하게 화를 냈고, 그러다 깨달았다. 이래 봤자 아무 소용 없구나. 화를 내는 건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관계에도 해롭구나. 몹시 해롭구나.

 

고민 끝에 그 이듬해에 시작한 것이 바로 지각시 외우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집과 동시집들을 뒤져 적당한 길이의 다양한 시들을 타이핑해서 손바닥 크기의 시 카드를 만들었다. 지각을 한 친구는 시 카드를 한 장 받고 그 시를 외운다. 그리고 그날 일과 중 아무 때나 내게 와서 한 번 암송하면 된다. 물론 시는 지각할 때마다 매번 바뀐다. 실험적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각한 학생과 내가 서로 감정이 상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친해지면서도 지각이 현저히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지금까지 십 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시 카드로 제작되는 지각시 목록은 점점 더 풍부해졌고, 학생이 읊어 주는 시를 듣고 그 학생이랑 대화하는 시간은 점점 더 즐거워졌다. 지각하는 습관이 끝내 바뀌지 않아 일 년 내내 거의 매일 시를 외우는 친구들도 매년 한두 명씩 꾸준히 있었다. 그 친구들도 이제 다 어른이 되어 이 각박한 세상을 헤쳐 나가고 있을 텐데, 그 많은 시들이 기억나진 않겠지만, 시를 외우며 웃음을 주고받던 분위기, 그리고 그때 그 담임샘이 자기를 참 좋아했었다는 사실 정도만 어쩌다 떠올라도 마음이 아주 조금은 포근해지지 않을까?

 

올해 우리 반인 J도 삼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날마다 지각시를 외운다. J70여 종의 시 카드를 다 섭렵한 후론 내가 개인적으로 읽는 시집을 아침마다 빌려주고 있다. 이성복의 그 여름의 끝’,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현택훈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등 늘 곁에 두고 자주 보는 시집들 속 익숙한 시들을 J의 목소리로 새롭게 듣다 보니, 전에는 미처 가 닿지 못했던 깊이의 감동이 내 안에 훅 뜨겁게 올라와 남몰래 코끝이 찡해진 일도 여러 번 있었다. 3 담임으로서 그 어느 해보다 바쁘고 버거웠던 이번 학년도를 보내는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J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외워 온 시를 듣느라 일손을 멈추고 웃으며 귀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눴고, 그때마다 생각했다. 이 시간이 이 친구들에게 훗날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 훗날이 오기에 앞서 내겐 이미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순간들이라고.

 

그간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매번 정성껏 내게 시를 외워 준 J에게, 그리고 모든 친구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시를 들려줘서 고마워. 잊지 않을게,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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