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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94호> 벽제에서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2. 26.

 

그곳은 벽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싸늘한 몸이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백골과 뼈부스러기가 되어나왔다. 백골은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바스라졌다. 나를 낳고 안았으며 장난치며 씨름을 하던 몸. 가끔은 때리고, 자주 소파위에 누워있었던 몸. 해고 통보를 받은 뒤엔 실없이 웃고, 암 선고를 받은 이후엔 말 없이 창밖을 응시하던 몸. 그 큰 몸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던 중환자실에서는 왜소해보였다. 그리고 그 몸이 산산조각으로 으스러지는 순간은 내가 안주해오던 세계가 부서지기엔 너무 감쪽같이 짧았다. 남은 세 가족에게 닥친 시간들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생채기를 내었다. 일상을 받치던 커다란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린 느낌이었다. 그의 몸은 사라졌으나, 나의 의식과 몸은 아빠가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절뚝거리고, 헛발질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또 다시 벽제로 오게 된 것은 2년 반이 지난 20144월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에 지원하였는데 배정받은 부대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위치한 포병여단이었다. 신학생 출신이었던 나는 운 좋게 군종병으로 선발되었다. 군종병의 일과라고해서 다른 병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근무처가 교회이고 교회와 관련된 업무를 할 뿐이었다. 군대에서 교회는 신앙심으로 정신전력을 강화시키고, 유사시 위문이나 장례절차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군종병과가 다른 병과와 크게 다른 점은 직급 상사가 군종목사라는 것이다. 목사님들마다 성향은 달랐지만 다른 병과에 비해 확실히 느슨한 분위기가 있었다.

복무기간 동안 가장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동시에 가장 날 즐겁게 했던 존재들은 생활관 동기들이었다. 현우, 찬호, 동욱, 대용, 태수, 대윤, 민준. 공권력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합숙하게 된 사이였지만, 이 불편한 합숙기간 동안 다른 몸들과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감각들을 다시 익혔던 것 같다. 생활관 청소, TV 채널, 식습관, 위생습관, 수면습관, 대화법, 신앙, 가치관 모든 게 다른 성인 남성 8명이 한 공간에서 지낸 2년 가까운 시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인격체들을 받아들이는 수행을 하는 시간들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동기들이 클래식 채널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있는 나를 보며 경악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침에 일어나 요가 채널을 틀고 침상 위에서 요가 자세를 잡고 있는 나에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도 마찬가지였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전역을 할 때 쯤, 동욱과 UFC(미국 이종격투기대회)를 보고 있는 나 자신과 요가 자세를 잡고 있는 현우를 보며 어느덧 서로의 존재가 포개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읍내 셀프빨래방에서 빨래를 돌리고 있는데 몇 년만에 동욱에게 전화가 왔었다. “그땐 참 미안했다라는 전화였다. 동욱이 자존심을 긁어 화를 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화를 내고 대화를 하여 응어리진 마음은 없었으나 미안하다며 전화를 걸어준 그가 참 고마웠다. 그리고 왜인지 쌩쌩 회전하는 세탁기 앞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쩌면 인생은 번갯불처럼 불가항력적인 방식으로 떠나가는 이들찾아오는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매일 질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재의 골목으로 접어 들어간 이들은 나는 이제 없다라고 적힌 편지를 남긴다. 그러나 그 편지로 인해 그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당신. 오늘 하루 나를 견디며, 나를 만나는 당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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