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일본으로 날아가야 했었다. 무려 반 년이 넘도록 매달 모임을 가지고 준비했던 인권연대 숨(이하 숨)의 첫 번째 아시아 평화기행이 생각지 못한 문제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우리는 미리 예약해 놓았던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제주를 첫 평화기행 장소로 선택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제주 땅에서, 회원들은 매일 밤 허무하게 무산된 일본행에 대한 아쉬움과 허탈함을 술로 달랬다. 다음 평화기행은 꼭 제대로 꼼꼼하게 준비해서 떠나보자고 다짐을 하면서. “그런데 다음 평화기행은 어디로 갈꺼야, 형? 다시 일본을 준비할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술에 취해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헤벌쭉 웃으며 말하던 은규형의 그 반짝거리던 눈빛이 기억이 난다.
"베트남. 꼭 베트남에 갈거야."
숨 회원들과 제주에 다녀오자마자 다시 또 평화기행 준비모임이 시작되었고, 은규형의 바람대로 두 번째 평화기행은 베트남으로 선택되었다. 지난 첫 번째 평화기행의 실패 탓인지 불과 서너 번의 모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6월 6일 저녁에 베트남 다낭으로 떠나 6월 11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오는 5박6일 일정의 베트남 평화기행은 인권연대 숨이 기획하고 있는 아시아권 평화기행 시리즈의 두 번째 일정이었다.
정확한 일정이 확정되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날을 불과 열흘을 남겨둔 시점에서 나는 그제야 부랴부랴 베트남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게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그저 영화 속 몇몇 장면들로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지극히 추상적인 나라였다. 기억하는가? 지금은 작고한 로빈 윌리엄스가 아침마다 라디오 방송국 마이크 앞에 앉아 "굿모닝 비엣남!"을 외치던 장면, 혹은 윌리엄 데포가 정글에서 베트콩의 총탄을 맞고 두 팔을 허공으로 뻗으며 장렬하게 쓰러지던 장면, 또는 라디오헤드의 그 우울한 명곡 creep이 울려 퍼지고 있는 술집 안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불안하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양조위의 창백한 얼굴 같은 것들 말이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무려 30여 년간 거의 매일 민간인 학살과 전투가 일과처럼 벌어져 그야말로 한 세대가 전멸하는 고통 속에 던져졌던 그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고작 몇몇 영화들을 통해 느끼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그만큼 내가 베트남에 대해 무지했고 무관심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다. 겨우 영화 몇 편과 신문기사 몇 줄로 얻은 얄팍한 지식만으로 그 땅을 밟는다는 것이, 웬지 그 나라와 그 나라 국민들에게 실례를 범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6월 6일 출국하기 전 날까지도 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일들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고, 열흘 전부터 손에 쥐고 있던 한국군 베트남 학살에 관한 책도 서른 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평화기행 출발 당일 아침에서야 나는 부랴부랴 여행용 배낭을 꺼내 옷가지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호들갑을 떨어야 했다. 그런 부산함 덕분에 어딘가 떠나기 전의 여행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여행의 설렘 따위를 느낄 수도 없었다.
부대끼는 마음을 뒤로 하고 오후 2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탓인지 아직 다른 일행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제야 비로소 여행을 떠난다는 실감이 들어 터미널 바깥 흡연장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며 지난 열흘 동안 서른 장을 채 넘기지 못한 책을 배낭에서 꺼내어 읽으며 일행들을 기다렸다. <1968년 2월 12일>이라는 제목과 <베트남, 퐁니 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라는 부제를 가진 고경태 한겨레 기자가 쓴 책으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퐁니 퐁넛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번 평화기행을 통해 우리가 직접 만나게 될 거라는 <응우옌티탄>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어 한참을 읽어 내려갔다.
저 멀리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끌고 오는 은규형이 보인다. 이번 평화기행은 총 여덟 명의 회원이 함께 한다. 숨의 일꾼인 은규형과 규남형수, 명희 누님과 종순 누님, 그리고 순결 형님과 이번 베트남 평화기행에서 흔쾌히 가이드를 맡아주신 강곤형님과 나. 그리고 서울 사는 규련 누님까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알맞은 구성이다. 지친 심신에 여행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강곤 형님을 뺀 나머지는 모두 베트남이 초행이다 보니 강곤 형님의 베트남 이야기에 모두가 귀를 쫑끗 기울인다.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구나.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처음이다. 늘 홀로 여행 다녔더랬다. 혼자가 좋아서, 혼자가 편해서, 혹은 늘 혼자였기에, 혼자가 아니면 여행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함께 웃고 떠들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질만큼, 즐겁다.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들의 여권을 받아든 창구 직원들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가 않다. 쉽게 쉽게 발권이 이루어지는 다른 여행객들과는 달리, 우리 일행만이 거의 십오분이 넘도록 발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구 직원은 자꾸만 여권을 살펴보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대고, 여기저기를 분주하게 오간다.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온다. 이거 뭐지? 또 뭔가 일이 잘 못 되어 일본에 이어 베트남 평화기행도 무산되는건가? 우리들의 여권을 들고 사라졌던 직원이 한참만에야 돌아왔다. 그리곤 대뜸 출국금지를 선언한다!
뭐라고요? 출국금지? 알고보니 베트남은 무비자로 보름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데, 베트남을 다녀온지 한 달이 지나야만 다시 또 무비자로 입국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들의 베트남 현지 가이드를 맡기로한 강곤 형님이 지난 달 베트남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가족 여행을 다녀온지가 한 달이 채 되질 않아서 비자가 없이는 출국 할 수가 없다는 것. 그러니까 다른 일행들은 상관이 없지만, 강곤 형님만은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와야 다시 베트남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거였다. 순간, 일행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아! 가이드 없이 우리들끼리 베트남 평화기행을 하란 말이야? 이건 저주다! 정녕 인권연대 숨 평화기행은 저주를 받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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