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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소모임 일정 안내/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미'

<후기> 211213 『99% 페미니즘 선언』낸시 프레이저, 친지아 아루짜, 티티 바타차리야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12. 15.

(왼쪽) 99% 페미니즘 선언 책 사진 (오른쪽) 인권연대 숨 소모임 펠프미와 세로읽는 저녁 함께 

 

 

 

 

재재   "페미니즘은 반자본주의 투쟁이다!"

 

 사회적 재생산, 자유주의 페미니즘, 킥백 페미니즘… ‘이게 뭔 소리지? 글자 크기는 왜이렇게 크지?’ 낯설고 딱딱한 단어들을 나열한 강렬한 선언들. 이제까지 읽어왔던 페미니즘 책들과 다른 <Feminism for the 99%> 첫 인상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며 우리 사회 구석 구석의 차별이 어떻게 연결됐고 우리 중 99%가 어떻게 자본주의에 의해 착취 당하고 있는지 듣게 된다. 책이 끝으로 갈 수록 한 줄의 선언마다 분노하고 공감하고 흥분하게 됐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짧지만 함께 투쟁을 나서자고 독려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책이다.

 여성들이 직면한 뿌리깊은 젠더 차별의 원흉은 무엇일까? 저자는 ‘페미니즘의 가장 큰 적(enemy)은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제일 기피하는 페미니즘과 반자본주의를 동시에 이야기한다. 얼핏보면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보다 사회주의자의 반자본주의 선언문에 가깝다.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이들 중에서도 반자본주의에 반감이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마치고 나면 자본주의가 얼마나 체계적이면서 드러나지 않게 우리 대다수와 특히 여성을 착취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페미니즘은 반자본주의일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이윤창출과 생산을 위해 모든 것을 착취한다. 노동자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노동권을 무시하고 더 저렴한 노동을 위해 인종차별을 조장한다. 미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자원을 뽑아간다. 이런 착취의 제일 큰 피해자는 언제나 소외됐던 사회적 약자와 여성들이다.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으며 개인과 가정의 몫으로 떠 넘긴다. 우리 99%가 직면한 고난과 차별을 개별화시키고 대중의 힘을 약화시킨다. 약자들 간에 혐오를 조장한다. 그래서 우리의 공동의 적인 자본주의에 함께 맞서야한다는 선언은 강하고 날카롭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가짜 페미니즘이다.’ 저자는 첫 선언으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만 빌려 쓰고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지배 계층에 올라간 소수 여성들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배층에서 여성의 비율이 올라갔지만 여성문제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공했지만 젠더 차별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엘리트를 통한 정치는 아무런 변화를 이끌지 못함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제 남은 것은 내려놓기(kick-back)와 연대를 통한 투쟁’이라고 설득한다. 

 자본주의는 한국에서도 99%의 여성들과 노동자의 희생을 양분으로 성공적으로 뿌리 내렸다. 우리 땅의 모든 자원들이 경제활동을 위해 소모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3세계 노동자들도 착취하여 소위 선진국에 들어섰다. 1%가 보여주는 화려한 열매를 보며 우리 중 다수는 능력주의를 종교처럼 신봉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시스템처럼 자본주의는 우리 눈과 귀를 막고 모든 곳에 스며들어서 착취하고 있다. 그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순간 우리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다. 페미니스트로써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우리 모두가 평등하기 전에는 만족할 수 없고 정의가 구현되기 전에는 법적 권리에 만족하지 않으며 모두를 위한 자유를 근간으로 개인의 자유가 매겨질 때까지는 민주주의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마지막 선언을 기억하고자 한다.

 

 

 

 

 

리로드   99퍼센트 페미니즘 선언

 

드러나지 않았던 혹은 곱게 치장된 세계의 가면을 한꺼번에 벗겨 버리는 99퍼센트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와 천지아 아루짜 그리고 티티 바타차리야가 공동으로 작업한 선언문은 지금 여기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로부터 소외된 모든 이의 실상을 길지 않은 언어로 적확하게 고발하고 있다. 실상에 대한 나열에 그치지 않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11가지 테제에 걸쳐 제시하고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경도된 페모크라트(여성주의 관료들)와 여성 권력가의 1퍼센트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내려놓는 페미니즘’을 제시하는 부분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들이 말하는 ‘내려놓는 페미니즘’의 내용은 이렇다. “유리 천장을 부수고, 그래서 대다수가 바닥에 쏟아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게끔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다. 전망 좋은 사무실을 차지한 여성CEO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CEO와 전망 좋은 사무실이란 것을 없애 버리길 원한다.”


99퍼센트의 페미니즘 선언에서 특별히 공감하며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을 소개한다.


“자본은 자연을 훼손하고, 공권력을 도구화하고, 무임금 돌봄 노력을 모으기 위한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주기적으로 스스로와 나머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의탁하는 여건 자체를 와해시키고 있다. 가계당 임금 노동 시간을 늘리고 사회 복지 사업에 관한 국가 지원을 축소하려는 신자유주의는 가족과 지역 사회 여성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이처럼 보편적인 몰수가 만연한 상황에서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 투쟁은 무대의 중심에 있다. 인종을 몰수하는 자본은 이를 빌미로 자연 자원과 인간 역량을 몰수하되 그 재충전과 재생산에는 비용을 지불 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늘려왔다.”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은 깊이 있고 광범위한 사회 변혁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그 자체만으로 낙태 합법화는 병원비를 지불 할 수단도 없고 낙태시술을 제공하는 의료 시설에의 접근성도 없는 가난한 노동 계급 여성들에게 거의 무의미하다. 오히려 재생산 정의는 의료계의 인종 차별과 우생학적인 관행을 끝내는 것뿐 아니라 보편의 비영리 무료 의료 서비스를 요구한다. 임금 평등은 가난한 노동자 계급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넉넉한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일자리와 실질적이고 실행 가능한 노동권, 집안일과 돌봄 노동을 위한 새로운 조직이 함께 뒤따르지 않는 한 비참 속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젠더 폭력을 금하는 법률 역시 형사 사법 제도의 구조적인 성차별과 인종주의를 모르쇠로 두고 경찰의 잔혹 행위, 대규모 투옥, 추방 협박, 군사 개입, 직장에서의 괴롭힘과 학대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잔인한 속임수에 그칠 뿐이다. 법적 해방도 여성이 가정과 일터에서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보장하는 공공 서비스, 공공 주택, 자금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빈 껍데기로 남는다.”


“단지 먹고 잘 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보살피고,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래를 위한 자신의 희망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양하는 활동들을 총망라한 개념이 ‘사회적 재생산’이다. 사회적 재생산 투쟁의 진짜 목적은 사람 만들기가 이윤 창출보다 우선이 되는 질서를 정립하는 것이다. 오직 빵만을 위해 투쟁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은 빵과 장미를 위한 투쟁을 구현하고 발전시킨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일찍이 여성해방은 “새로운 사회 질서와 전혀 다른 경제 제도의 승리라는 결과로서만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99퍼센트의 페미니즘 선언은 모든 이들의 해방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남은결   『99% 페미니즘 선언』 친지아 아루짜 外, 움직씨 刊, 2020



지은이가 세명이다. 친지아 아루짜(Cinzia Arruzza), 티티 바타차리야(Tithi Bhattacharya), 글구 그 유명무성헌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선언문에 이어 테제 11개를 등재시켜 신자유주의 민낯을 낯낯이 까발렸다. 모다 주워 섬길 순 없구-이런저런 서평에서 모다 활자화 되엇으니- 내는 단 한나-테제 5으 키워드 '사회적 재생산'-만을 두드려 보겄다.

쎅스노동, 잉태노동, 뱃속돌봄노동, 출산노동, 출산후돌봄노동이 모다 여성 몫이다. 그런데 무임금이다. 신자유주의는 교묘허다, 원성을 잠재우기 위해, 1%를 위헌 막대헌 잉여가 1%를 위헌 더욱 막대헌 잉여루 쌓여야허므로, 그래야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계속 기능헐 수 잇으니께 점짐적으루 한나썩 의료보험적용확대, 무상교육, 무상급식, 다자녀지원금 등으루 질질질질 여기꺼정 끌구 왔다. 터질게 터졌다, 그렇지 않았으면 더 이상혓을 일이.

2018년 3월 8일, 세계 여성으 날 총파업. 500만명이 넘는 시위대열이 에스파냐를 폐업시켰다. 그들은 외쳤다.

"3월 8일 우리는 이제 서로 팔장을 끼고 모든 생산 활동과 재생산 활동을 중단헌다."

그들으 빗장을 풀 수있는 길은? 방법은 한나 뿐. 신자유주의를 소멸시키는 것.

그것은 내게는 가부장제 종식, 소수자차별 종식, 자유주의 페미니즘 종식, 1% 페미니즘 종식, 젠더 이원론 종식, 이성애 규범성 종식, 녹색 자본주의 종식, 무임금 재생산 노동 종식, 계급 환원주의 종식으루 읽힌다.

아~~ 근디~~ 오탈자 범람이다. 딱 한나만 집구 넘어가야겄다. 82쪽 각주 1은 "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을 가리키는 신조어"루다가 2쇄에선 꼬오옥 바꿔야 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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