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머뭇거릴 때가 있다. 지금까지 듣거나 공부해 온 훌륭한 정보나 지식이 내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빙빙 돌거나, 하려고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 있지만 그저 거기까지 일 때, 20분 전까지 부르던 노래의 첫 음이 기억나지 않아 발표 순서가 시작되어도 발표를 시작하지 못해 이마에 땀만 흐를 때, 내 딴에는 이리저리 궁리하며 열심히 쓴다고 쓰고 퇴고도 했는데, 무얼 썼는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그래서, 내가 본 것을 독자도 똑같이 볼 수 있게 쓰세요 라는 문장이 무슨 문장인지 알지만, 그렇게 쓰려고 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 가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일 때, 원고를 쓰긴 써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 떠다니지만, 결국 몇 날 며칠을 첫 문장, 첫 문장 하며 지내고만 있을 때... 나는 여전히 머뭇거림의 한가운데 서서, 머뭇거린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도 왜 머뭇거리냐고 나를 비난하기보다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그래, 거기 서 있어도 괜찮아 거기까지여도 괜찮아, 쓴다고 썼는데 그런 피드백만 들으니 힘 빠지지, 상황과 대상을 생각하며 다시 써보면 되지 뭐~라고 나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내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일은 일상 속에서 여전히 다반사여서 그런 나에게 지치기도 한다. 여전한 애씀의 끝으로 나를 몰아세우거나, 비난하거나... 둘 중 하나. 아니, 다른 선택지도 있다. 애쓰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기.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진짜 못했는데 ‘가만히 있기’ 숙제를 받은 순간,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선택지를 나에게 부여하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스멀스멀 피부가 간지럽다든지, 머릿속에서 ‘가만히 있지 마. 얼른 일어나서 언니가 식사비를 계산하시기 전에 가서 계산해. 가만히 있으면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든지, 언니가 식사비를 계산하고 나서 함께 걸을 때에도 일정 시간이 지날 때까지 언니가 계산했다는 한 가지 문장으로 나를 눌렀다면, 언니 감사히 잘 먹었어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다. 고맙다는 말도 어느 때에는 좀 진정성이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서 하지 못하고, 고맙다는 말을 상대가 다음에 내가 또 사달라고 하는 말로 들을까봐 걱정되어서 말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말한다. 상대가 만약 내 말을 오해했다는 말을 하면 그때 해명해도 괜찮다는 걸 이제사, 조금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거나 바꿀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상황을 맞닥뜨린 보아주는 것이라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직 오지 않은 일에까지 마음을 쓰고, 그 일이 가슴 아프거나 힘든 일이라면, 겪지 않으려는 노력을 혹은 겪지 않게 하려고 하는 그런 불가능한 일에 몸과 마음을 써왔다고, 나를 읽는다. 큰 소리가 두려워서 웬만하면, 큰 소리가 날 것 같은 상황이 다가오려 하면 어떻게든 웃어가며 그 상황에서 큰 소리 안 나게 해결하려 했고(마음과 웃음이 일치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도...), 큰 소리가 났다면 그 상황 속에서 나도 좀 목소리를 내거나 그랬으면 좋았을 걸 마음과 머릿속에서 들끓는 소리를 몸 밖으로 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가며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리고, 몸 밖으로 소리를 내더라도 진정 내가 내고 싶은 내용은 슬픔이나 외로움인데, 분노나 억울함이 내 말의 형식이 되어 나오니, 나도 나의 상대방들도 나를 오해하며 많은 시간을 지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이 산문이든, 동시이든, 내가 하는 문장이 평서문이든 설명문이든 내가 본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상대에게 그리고 나에게 가닿지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내 속내를 들키면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렵고, 거절당할까봐 겁이 나서, 진실된 말을 내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늘 내 진실의 주변에서 빙빙 도는 수건돌리기 같은 게임을 반복하며 지내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수건이 상대가 내 뒤에 놓은 것이든, 내가 상대의 뒤에 놓은 것이든,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찾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의 사이에서 그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움츠려 지내왔다고... 그래서,‘온전함’이라는 욕구 단어를 만나고는 4박5일을 내리 매일 그 온전함이라는 상태가 그리워서 울었다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때의 나의 외로움과 오랜 슬픔에 대해 이제, 그렇게라도 정의할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의 금과도 같이 아름다운 공부 내용들을 번갯불에 콩처럼 구워 날름 먹을 수는 없는데 현실 속에서 그것을 바라는 절박함과 애씀이 나에게 있었구나, 있구나 하며 나를 쓰담쓰담한다.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며, 위로를 건네려 할 때 내가 거꾸로 그에게 위로를 다시, 건네려 하기보다, 위로를 위로로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야, 나에게 허락한다. 지금의 나를 고쳐서 어디 훌륭한 자리에 앉히려 하기보다, 지금의 나를 내가 다시, 키운다. 어여쁘게 나를 보아준다. 지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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