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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123호> 연습 7_잔디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2. 8. 2.

 

수요일 아침이었다. 남편은 둘째 아이와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길을 나섰고, 남은 아이들은 스스로 채비를 하고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나가고, 설거지를 하고, 방바닥을 발걸레로 쓱쓱 밀고, 주유소 언니가 아침마다 지나가며 보시고는 재미있어서 한 번 웃고 가신다는 그 빨랫줄에 빨래를 나란히 널고, 향이 구수한 커피를 한 잔 내려 차에 싣고, 어제 부른 노래를 들으며 나도, 길을 나서서 출근하고 있었다. 늘 지나는 첫 번째 터널을 빠져나와 네거리를 지나, 두 번째 터널을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머뭇거리는 고라니를 보았고, 고라니가 아침에 있네, 생각하며 고라니가 차도로 나올 거라 예상치 못했고, 내 차 뒤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보았고, 머뭇거리던 나는 차를 멈추지 않았고, 고라니랑 범퍼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도 들었다. 뒤에 오던 트럭은 내 차를 추월하여 지나갔고, 나는 터널 입구에 있는 좁은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덜컹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조금 울며, 허나 차에서 내리지는 못하고 잠시 정차하였다가, 터널 바깥으로 나와서 갓길에서 깜박이를 넣고, 눈물을 닦다가, 그에 시동을 끄고, 가만히 정말 그냥 가만히 흐린 하늘을 보며 있었다. 그러다 첫 번째 떠오른 생각은 고라니에 대한 미안함, 이십 년 동안 운전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이 길 위에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개구리이든, 작은 새든, 고양이든 잘 피해 다녔는데...... 아이고, 고라니와 이리 되다니... 하며 미안함에 울었다. 한 십 분쯤 그렇게 애도하고 나서는 이 뜻밖의 상황에 부딪혀 당황스러움과 슬픔에 빠져있는 나를 쓸어내려 주고, 두 팔을 교차하여 포옹하듯 자세를 만들어 내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고, 차에서 내려 이제 십 년 정도 나와 함께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차를 살펴보았다. 오른쪽 안개등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범퍼는 깨져서 축 늘여져 있었다. 차 안에서 빨대를 찾아 늘어져서 길에 끌리는 부분을 잡아 올려 말끔히 묶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차에 타서 가만히 있는 동안, 그곳에 돌아가서 볼까 하는 마음이 왔다갔다 하였지만, 그곳으로 돌아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또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사무실에서 결연후원 신청을 긴급히 해야 하는데 선정 명단을 불러 달라 해서 고심하다, 두 이용자의 이름을 말하고, 현재의 나의 상황을 말하고, 괜찮냐?는 질문을 받고, 좀 떨리지만 출근할 수 있다고 주고받는 통화를 종료한 후 5분쯤 더 가만히 있다가, 다시,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고, 천천히 조심스레 달려 주차를 하고, 주차하자마자 걸려온 얼마나 놀랬겠나, 놀란 것이 생각보다 오래 가더라 청심환 준비해 놓고 있으니, 약국 들르지 말고 그냥 조심히 오라는 과장님의 전화를 받고 울컥했으며, 과장님이 건네주는 청심환을 받아 교실에 들어와 고맙게 먹고, 잠시 앉았다가 오전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하고, 점심시간에 루피 인형을 베고, 교실의 긴 의자에 누웠다. 지금까지 고라니와 몇 번 만났지만, 거의 퇴근길이나 밤 외출했다 돌아올 때 만났는데, 그러면 차 시동도 끄고 불빛도 끄고, 그러고 있으면 그에게도 나에게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는데, 흐린 오늘 아침 고라니는 어쩌다 나와 마주쳤고,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자국을 남길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나에게 비난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뒤에 차가 오건 말건 차를 멈추었어야지, 아니면, 재빠르게 비상등을 켜고 차를 멈추었어야지, 아침에 커피를 내리지 말고 그냥 출근했으면 그런 사고가 안 났을 거야, 사고 난 곳에 가보고, 사체 처리 신고를 했어야지, 사고가 났으면 얼른 남편에게 알려야지, 지금 누워있지 말고 빨리 카센터에 가서 차가 다른 곳도 이상이 있는지 살펴봐야지 뭐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안 하거나 살짝 생각하고는 흘려보낸 나를 발견하였다. 누워있던 몸을 서서히 일으켜 총무팀 선생님께 가서, 부서진 차 오른쪽 귀퉁이 사진을 보여드리고, 거래하면 좋은 믿을만한 카센터에 대해 충고를 듣고, 퇴근을 해서, 남편에게 이러구저러구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 차를 데리고 카센터에 가고, 상담을 받고, 부품이 오는 대로 차를 고치러 오면 된다는 말씀을 듣고, 말끔해진 차를 다시 타는 그 순간까지 여느 다른 때와 다르게, 쫄지 않고, 차 수리비를 계좌이체 해 주겠다는 남편의 고마운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넙죽 기쁘게 받고(정말, 흔쾌히 고맙게...) 주체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해결하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범퍼를 교체하는 날, 세 시간 동안 어디 다른 데 가지 않고, 카센터 사무실에서 머무르며 책을 보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시며 이 더운 날 당신이 얼마나 고생스럽게 차를 고치러 오셨는지 이야기하시는 고령의 운전자분께 차가운 얼음물을 드리거나 달달한 아이스 커피도 한 잔 받아드리며, 그렇게 색다른 환경 속에 나를 두기도 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뿌듯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그곳을 지나 여기에 왔다. 저녁 퇴근길에는 그곳맞은편 길로 가면서도 그곳을 신경 쓸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매일 그렇게 습관처럼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운전하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차량이 있으면, 혹은 빗물 고인 웅덩이에 비친 구름이 고라니처럼도 보여 움찔움찔하니까... 그럴 때마다 내 몸과 기억 속에 새겨진 상처를 토닥인다. 그리고, 그날 퇴근길에 귀가하는 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아준 둘째아이와, 나의 동료들의 손길과 흔쾌히 계좌이체하여 준 남편의 마음을 기억한다. 어느 순간에든 사랑과 연결되어있는 나를...

 

 

이번의 일곱 번째 연습에서 내가 놓친 부분은, 고라니에 대한 애도보다 사고 직후 떨리고 당황한 나에게 공감을 첫 번째로 해야 했다는 것. 그 부분을 복습한 것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엄지 척을 받았으니, 그리고 당황하고, 무서웠던 나를 비난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것이야, 라고 말해주는 내가 나에게 있으니... 이것을 말해주려고 고라니가 쓰러져갔는지 알 순 없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고라니를 그리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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