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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어린이공원 안의 어른 점유공간에 대한 단상

by 인권연대 숨 2023. 6. 26.
어린이공원 안의 어른 점유공간에 대한 단상

배상철 (마을N청소년 대표, 인권연대 회원)

 

어린이공원에 어른들의 점유공간이 늘어나니....

얼마 전 아침 산책길에 마주한 용암동의 한 어린이공원의 풍경에 눈시울이 절로 붉혀졌던 적이 있다. 누가 보기에도 어린이 친화적으로 잘 조성된 공원 한쪽에는 어른들의 운동 시설과 어른들의 높이에 맞춘 잘 짜인 나무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었다. 탁자 위와 바닥에는 담배꽁초와 술병뚜껑, 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탁자 한옆에 놓아둔 종량제 봉투에는 캔, 플라스틱 등 재활용 넘쳐나고 먹다 버린 과자에는 개미들이 새까맣게 꼬여 있었다.

청소년시설 중 체육관이 있는 규모가 큰 청소년센터도 이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청소년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어른들이 이용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 청소년 보다 어른들의 점유공간으로 인식되어 청소년은 시설을 이용하기 매우 어렵다.

 

어른들에게도 쉴 공간이 필요하지만....

코로나 19로 어른이건 청소년이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건강과 여가를 생각하는 걷기문화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직장인들은 왁자지껄 회식문화에서 조용한 을 추구하는 문화로 탈바꿈된 경향도 있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에게도 충분한 여가와 쉼의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어린이 청소년 공간을 어른들이 무단으로 점유하는 방식으로 충분한 쉼을 만끽할 수 있을까?

 

어린이 놀이터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예전에 근무했던 대전의 청소년문화의집 근처 어린이공원은 불량 청소년들의 온상과도 같은 곳이었다. 훤한 대낮에도 삼삼오오 모여 담배 피우고, 다음 날 아침이면 소주병과 과자봉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 술주정뱅이 어른이 공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 공원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무늬만 어린이공원이었다. 이랬던 어린이공원이 확 달라졌다. 공간 활용 면에서 어린이공원에 걸맞지 않은 정자 없애고, 칙칙한 그네와 미끄럼틀 위주에서 밝고 화사한 놀이터로 탈바꿈하였다.

환경이 바뀌니 더불어 어린이공원을 찾는 주된 층이 바뀌었다. 더 이상 이곳 어린이공원은 웃통 벗고 죽자사자 덤비는 술주정뱅이나 불량 청소년의 흡연공간이 아닌 공간이 되었다. 오전 시간에는 아이들 유치원 보낸 젊은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낮에는 어르신들의 운동 공간으로, 방과 후에는 어린이, 청소년의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새롭게 조성된 어린이공원은 매일 매일 시끌시끌하다. 그냥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생동감과 활기가 넘치는 기분 좋은 시끄러움이다.

 

삶의 변화를 추구하며....

어두운 환경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고, 밝고 환한 환경에서는 긍정적인 인식이 생기게 되어있다. 놀이터 하나 바뀌는 것으로 아동·청소년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투자처는 없을 것이다. 매일 매일을 학원과 집을 오가며 각박한 생활을 이어가는 청소년에게 쉼과 여유를 줄 수 있는 환경의 변화로 긍정적인 삶, 활기찬 청소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다면 이 또한 투자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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