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와 불심검문
배상철 (마을N청소년 대표, 인권연대 ‘숨’ 회원)
■ 구멍 뚫린 치안 '묻지마 범죄'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심 한복판에서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 신림역 인근 무차별 흉기 난동으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분당구 서현역 ‘묻지마 칼부림’으로 1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후 온라인상에는 전국 곳곳에서 묻지마 범죄를 예고하는 글들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었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에 경찰은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전국 주요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장소 11곳에는 전술 장갑차를 투입했다. 소총으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 전술 요원도 배치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흉기 난동 범죄에 대해서는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말라“며 흉기 소지 의심자와 이상 행동자 불심검문 등 정당한 물리력에 대해서는 경찰면책특권을 부여한다고 했다.
■ 불심검문과 각자도생
특별치안활동 선포 후 총 442건의 불심검문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한 중학생을 흉기 소지자로 오인해 불심검문을 시도하던 중학생이 놀라 달아나다 넘어져 머리, 등, 팔, 다리에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경찰은 강압적으로 수갑까지 채웠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중학생이 오해할만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불심검문에 걸리지 않으려면 오해할만한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검은색 후드티도 입으면 안되고, 모자를 눌러쓰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는 일 따위는 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긴박한 상황에서도 절대 달리기는 하면 안되는 것이다.
불심검문의 기준? 그런 건 없다. 그냥 각자 알아서 남에게 눈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치안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 장갑차와 불심검문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누구나 ‘불심검문’의 안 좋은 기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집회나 시위가 있는 현장을 지날 때는 누구나 불심검문의 대상이 되었고 사복경찰 정복경찰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사생활 침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2023년 뜨거웠던 여름, 도심 한복판에 장갑차가 등장하고 무장한 경찰력이 진을 치고, 사라졌던 불심검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자칫 총기사고로 인명피해가 생겨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경찰면책특권’의 면죄부를 부여하려 하고 있다. 검찰 권력의 특별한 비호를 받는 경찰청장의 진두지휘 하에 선량한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살벌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 구멍 뚫린 치안! 장갑차가 답은 아니다.
사회 범죄가 늘어나고 치안에 구멍이 난다고 해서 무작정 장갑차부터 들이밀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심리학자들의 말처럼 묻지마 범죄도 그에 대한 원인이 있다. 대체로 사회에 대한 불신이며, 공권력에 대한 경계의 발동이다. 그러하기에 그에 맞는 적절한 대책의 수립과 제도와 시스템의 보완을 고민해야 한다.
절대로 총기로 무장한 공권력을 확장시켜 시민들을 불심검문하고 억압해서는 안 된다. 다시는 비인권적이고 폭압적인 공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혼돈의 시대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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