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45 <제53호> 시 읽기, 그 쓸쓸함에 대하여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늦더위가 여전하지만 그래도 가을이다. 가을은 좀 쓸쓸하다. 육아에 바쁜 나에게도 시나브로 쓸쓸한 기운이 파고든다. 이럴 땐 뭘 하면 좋을까. 파란 하늘을 따라 들로 나가도 나쁘지 않을 테고 극장에 홀로 앉아 영화를 봐도 좋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멋진 일은 서점에 가서 시집을 사고 시를 읽는 거다. 겉멋이라 비웃어도 좋다. 가을엔 시를 읽고 싶다. 시는 참 어렵다. 나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쉽게 읽히는 시도 있지만 내게는 어려운 시가 더 많다. (더 어려운 건 시집 마지막에 붙어 있는 해설이라는 글이다. 대체 무슨 이야길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 글들이 참 많다. 시를 설명해주는 글을 읽다 내팽개친 시집도 여러 권이다.) 그런데 어려운데도 자꾸 마음이 가는 .. 2019. 10. 22. <제52호> 딸 바보 보다 페미니스트 어때?!_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단 한 번도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페미니스트를 불편해했다.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센(?) 언니들이 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이면서도 페미니즘은 나와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땐 세상을 몰랐으니까. 페미니즘 혹은 양성평등 혹은 가부장적인 문화 등에 대한 고민은 결혼과 함께 찾아왔다. 결혼을 하니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내 남편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어른이다. 그렇지만 그는 가부장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내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나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로, 아내로 살아가면서 적지 않은 불만들은 쌓여갔다. 신.. 2019. 10. 22. <제80호> “삶이란, 주룡처럼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투쟁하는 것”_이수희(회원,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이 끼어 죽었다. 시신은 여기저기로 흩어졌고 수습도 한참이나 지나서 했단다. 너무나 어둡다고 작업장 좀 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해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고 본인이 구입한 손전등으로 작업을 했단다. 그의 유품에서도 컵라면이 나왔다. 석탄 먼지 가득한 곳에서 주린 배를 컵라면으로 채워가며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홀로 거대한 컨베이어벨트 앞을 지켰을 그를 생각하니 눈물이 솟구친다. 그렇게 사람이 또 죽었다. 아주 오래전 일도 아니고 바로 지금 말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 씨의 죽음은 너무나 참혹하고 참담하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자꾸만 질문하게 되는 죽음이다. 왜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 것일까. 왜 노동자들은 여전히 제 목숨을 내건 투쟁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2019. 10. 22.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