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장애는 공기와 같은 것
이구원
나에게 장애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장애가 있는 내 몸을 자긍심의 근거로 여기지도 않지만 딱히 비극과 불행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장애가 없었던 몸의 경험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장애를 무기력하고 불행한 것으로 만드는 이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서 분노와 좌절감을 종종 느낀다. 그렇기에 많은 중도 장애인 혹은 진행형 장애인들이 겪는 상실과 고통으로서의 장애에 대해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와해된, 몸”이라는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과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한순간의 사고로 겪게 된 저자의 장애, 그와 동반한 고통과 상실의 감정들, 또 오빠 제프의 질병으로 인한 진행형 장애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억과 감정들이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기록되어 있어 가슴이 저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제프에 대한 기록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신장의 기능을 얻게 된 나의 입장에서 좀 더 아프게 다가왔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지금 상태는 제프의 장애 초기 상황과 더 가깝긴 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장애에 대해 억지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장애를 무조건 비극적이고 불행한 것으로 여기는 관점도 거부하지만 애써 장애에 대한 긍정적이고 밝은 의미를 찾는 것도 지극히 비장애인중심주의적 관점으로 느껴져 불편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참 솔직하다. 다만 비장애인 시절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에 비해 장애 이후의 기억이 지나치게 대조되는 점에서는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저자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지 손상이 없는 상태를 나를 잃지 않은 것이라 외치는 것-발달장애인은 나를 잃은 것인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외침을 어떤 코멘트도 없이 기록한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감정적인, 하지만 논리성을 잃지 않은 서술은 힘들 수도 있는 책의 내용을 읽기 쉽게 만들어 주었다. 돌봄과 젠더, 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측면을 고찰한 것 역시 좋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전히 돌봄과 사회적 관계를 상당히 개인적 차원에 의존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만약 저자가 비장애인 시절 안정적 경제력과 폭넓은 사회적 관계를 쌓을 수 없는 상황의 여성이었다면, 이 책은 기록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장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조금 덜 이야기하고 있는 점 역시 아쉽다. 그럼에도 나를 더 확장 시켜 주고 나와는 다른 장애인들을 조금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장애는 불행이 아니고 불편한 것이다’
이재헌
내가 장애인활동지원사를 시작하며 가슴 깊히 새기고 있는 말이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혹은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며 불편한 점들을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같은 사고로 장애를 직면한다면 ‘나는 불행이 아니고 불편한 것이다.’라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상상해 봤다. 그 현실에서 그럴 용기가 남아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 책은 큰 사고 이후 심각한 지체 장애를 갖게 된 저자 크리스티나 크로스비가 장애인으로 살아왔던 과정의 서사다. 묘사할 수 없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 일상의 붕괴, 연인과의 관계 변화, 노동의 한계, 의식주를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 돌봄 노동자와의 관계, 신체 기능의 쇠락,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인 변화들. 저자는 이상의 사건과 상황들을 때로는 매우 섬세하게 때로는 담대하게 서술한다. 그 강인한 자아에 숙연해지고 전해지는 슬픔에 마음이 아팠다.
많은 장애인이 살아가는 현실을 떠올린다. 사회가 무수히 많은 개인의 불편을 방치한다면 그 사회는 무슨 존재 의미가 있냐고 외쳐본다. 서로에 대한 돌봄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의미이고 기억일 것이다. 나를 돌봐주던 이들과 내가 돌보았던 이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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