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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소모임 일정 안내/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미'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디어 마이 네임

by 인권연대 숨 2025. 9. 24.

펠프미 서른 네 번째

'디어 마이 네임' 샤넬 밀러 지음, 성원 옮김
피해자가 된다는 건 신뢰받지 못한다는 참혹한 현실을 뚫고 건져올린 디어마이네임
이재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가며 분노, 무력감, 슬픔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언론에서도 사법체계에서도 존중받는다고 느낄 여지는 하나도 없었다. 전방위적으로 조여오는, 너무나 숨막히는 2, 3차 폭력에 독자인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사건은 샤넬 밀러만의 일이 아님이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돈만 있으면 감방문이 활짝 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폭력이 발생했을 때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이 여자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폭력이 일어났을 때 남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면 사람들이 그 남자를 동정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내 끊긴 기억이 그에게 기회가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피해자가 된다는 건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몰랐다.”

 

샤넬 밀러가 2015년 저 먼 나라에서 겪었던 참혹한 일이 데자뷰처럼 너무나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지구 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성범죄를 다룰 때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없고 개인의 일탈로 그려지거나 흔한 이슈로 소비돼 버린다. 왜 우린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못하고 개인의 존엄과 일상이 송두리째 뽑혀나가는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지 생각해본다. 사법부는 정의의 대리인인척 하지만 실상은 기득권과 남성사회의 파수꾼일 뿐인가. 이런 암담한 세상에서 샤넬 밀러의 용기라는 등불은 그와 유사한 피해자에게 확산되고 병들어 있는 사회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점점 더 혐오와 가해가 더 빠른 속도로 광장을 점령해 간다. 언제쯤 약자의 투쟁이 마침표를 찍고 우리 사회의 약자도 존중받을 수 있을지, 멀게만 느껴진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이은규

 

샤넬 밀러는 집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스탠퍼드대에서 2015118일 새벽 강간을 당했다. ‘디어 마이 네임은 그 후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으로 가득한 개 같은 현실

을 촘촘하게 그리고 매우 적나라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기록은 내 내부의 상처를 탈바꿈하고, 과거와 대면하고, 이런 기억을 받아들이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기 위한 시도이다. 나는 그 기억들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기억에 이름을 붙이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내 이름은 샤넬이다.”(8)

 

성폭력을 당했을 때 그녀를 구조하고 강간범 브록 터너를 잡았던 스웨덴 남성들과 샤넬을 담당했던 경찰과 응급의료진과 검사 그리고 샤넬의 대변인이 되어준 사람들의 섬세한 조력이 피해자를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해 주었음을 샤넬은 책에서 몇 번이고 강조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어요.’ 내치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피해자를 섬세하게 감싸는 사람들이 피해 후에 맨 먼저 만나게 된 사람들이어서 샤넬은 운이 좋은 피해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운이 좋은 피해자로 설명되어질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피해자는 없었어야 한다. 그 어떤 운도 피해자에게는 피해일 뿐이다.

 

너무나 명백한 범죄임에도 법정에서의 힘겨운 재판과정을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강간범) 나를 하나의 몸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나를 인간으로서 파괴하려 할 것이었다.”

나는 돈만 있으면 감방문이 활짝 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폭력이 발생했을 때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면 이 여자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폭력이 일어났을 때 남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면 사람들이 그 남자를 동정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내 끊긴 기억이 그에게 기회가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피해자가 된다는 건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몰랐다.”(45)

 

샤넬은 고통을 겪으며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이름을 되찾았다.

치유는 나아감이 아니라고, 무언가를 찾아다니면서 재차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을 쓰느라 나는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상처 속에 머물러 있는 법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법을 배웠다.”

 

샤넬 밀러는 결코 자신만의 고통에 머무르지 않았다. 누구든지 당할 수 있는 비합리적이고 반인권적인 고통에 감응하며 성폭력과 인종갈등과 공권력의 횡포와 미디어의 폭력따위에 희생당하는 익명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인 사람들과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곳에 있는 소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끼는 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의심하거나 묵살할 때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매일 싸웠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싸움을 멈추지 마세요.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 (544)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의 맨 앞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이 책과 지은이에게 쏟아진 찬사들이 빼곡했다. 그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내용 두 가지를 소개한다.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잠재력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이 책은 피해자의 눈부시고 지워지지 않는 존재감을 헤아려달라고 당부한다.” (가디언)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는 경찰, 검사, 수사관, 판사가 꼭 읽어야 하는 책.” (LA 타임스)

 

여기에 숟가락을 얹어본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법조인 그리고 자칭 언론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이은규)

 

성폭력에 대한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샤넬 밀러의 <디어 마이 네임>
배상철

 

밑줄 치고, 숨 고르고, 울컥하고, 함께 기뻤고, 함께 슬펐다.

이 책은 진실을 꺼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홍승은 작가>

 

성폭력에 관해 대화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버린 책!” <글래머>

 

책을 펼치기 전에 책 띠지 앞뒤에 써있는 두 사람의 한줄 서평이 샤넬 밀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책을 어디에 방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듯 했다. 이 책은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대화 방식을 교정하기 위한 교정서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청년이 캠퍼스에서 성폭행을 당한 후 이름이 지워진 피해자’,‘익명의 피해자에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드러내기까지 당당하게 자신을 되찾아 가는 모든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대화 하나. 피해자를 무심하게 대하는 사회

우린 사냥감이었다’ (64p) 기자들은 그 녹취록을 샅샅이 훓으면서 내 표현을 이용해 대중들이 열독할 만한 독자적인 서사를 구축한 게 틀림없었다.(65p)

첫 번째 죽음 이후에는 다들 검은 옷을 입고 학교에 나타났지만 네 번째 이후에는 미화하지 말라고, 자극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다. 장미와 편지는 치워졌고, 분필로 쓴 추모 문구는 물을 뿌려 지워졌고, 초는 꺼졌고, 솜 인형은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69p)

나는 매일 밤 새편지를 받았고, 상처 주는 모든 문구를 음미했다.(85p)

 

대화 둘. 가해자를 걱정하는 사회

미국 대표 고등학교 수영선수 (가해자) 터너는 자유형 두 종목 기록 보유자라는 표현이 병원 같은 단어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65p)

기사 끝에 달린 첫 댓글은 대학 졸업생이 남학생 사교클럽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였다(67p)

그 남자는 겨우 열아홉 살이야. 그럼 그 여자가 상위 포식자 인거 아냐? (82p)

 

대화 셋. 주문을 외우다

나는 잘못한 게 없어. 난 강해. 난 목소리를 낼 수 있어. 난 진실을 말했어 (165p)

넌 너에게 상처를 준 그 누구보다 힘이 세다. 느끼고 반응하는 것은 무기력한 게 아니다. 아직 그걸 느끼지 못할 수는 있지만 넌 네 생각보다 더 강하다.(167p)

 

대화 넷. 진지하게 던져지는 실없는 질문

그의 질문은 다시 타코 전문점에서 시작되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타코 집에 대해 그렇게 많은 질문이 나올 줄 알았더라면 그날 타코 집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190p)

당신이 스탠퍼드에 간 날 베이지색 카디건을 입었다고 했는데, 맞나요? 그건 스웨터죠?(191p)

 

대화 다섯. 하나 보다 둘

200개 넘는 만두를 빚었다. 나의 외로움이 먹을 수 있는 무언가로, 영양가 있는 무언가로, 고춧가루 섞은 간장에 찍었을 때 맛있는 무언가로 바뀌고 있었다.

먹을 입이 나 하나뿐이 아니라 둘인 것은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나는 매일 빈 종이 한 장을 뜯어서 요리법을 적고 지갑에 넣은 뒤 필요한 채소와 고기와 향신료를 사러갔다.

조금 다듬기만 해주세요나는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이,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그리웠다.(207p)

 

대화 여섯. 진짜 대화

그건 여기서 살아남을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았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의 문제였다(219p)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느낌으로 전달되지 절대 노골적으로 발화되지 않는다. 진짜 대화는 그런 것이다.(299p)

우리가 해야 하는 진짜 질문은 '그녀는 왜 신고를 안 했어?'가 아니라 '너라면 왜 할 건데?'이다.(444p)

 

대화 일곱. 새로운 인용구

당신은 나의 가치를, 나의 프라이버시를, 나의 에너지를, 나의 시간을, 나의 안전을, 나의 친밀함을, 나의 자신감을, 나의 목소리를 앗아갔습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476p)

슬픔과 분노 같은 것들을 끼고 지낸다는 것은 내가 당한 성폭행 경험이 내게 선사한 가장 가치 있는 도구들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497p)

 

대화 여덟. 모두 다 함께

모든 곳에 있는 소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끼는 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의심하거나 묵살할 때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매일 싸웠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싸움을 멈추지 마세요.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의견진술서 544p)

 

디어 마이 네임

고통과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성폭력을 둘러싼 모든 믿음에 도전하고 인내하고 사색하고 도전한 시간의 끝엔 성폭력에 대한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샤넬 밀러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가는’ 디어 마이 네임
나순결

<여성성주의가대체무엇이관대>(펠프미) 9월 선정도서. 표현 참. 넘 고급지다. 블랙 유머가 뭔지 적확허게 알려준다.

천부건 개발이건 유머가 샤넬 작가를 살아가게 허구, 그으 책을 읽은 피해생존자를 계속 살아가게 허구.

무논 '살아가다'는 동사는 명사 '생활'과 밀접허다, '생존'과는 거리가 멀어두 한참 멀다.

-131쪽 마치 얼굴에서 지퍼가 열리듯 남자의 미소가 천천히 퍼져나갔고

-길거리 성희롱을 허는 사람들을 겨냥해 '1-800-나한테말좀걸지마'라고 적힌 가짜 명함

-206200개 넘는 만두를 빚었다. 나의 외로움이 먹을 수 있는 무언가로, 영양가 있는 무언가로, 고춧가루 섞은 간장에 찍었을 때 맛있는 무언가로 바뀌고 있었다

-219쪽 그건 여기서 살아남을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았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의 문제였다

-299쪽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느낌으로 전달되지 절대 노골적으로 발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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