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자빠뜨리고야 만다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얼굴을 잔뜩 구기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해인의 벌거벗은 몸을 안은 날,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이 일은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 9와 10 사이 벽에 용감하게 돌진하는 쪽보다는 영화 <나니아 연대기> 주인공들이 숨바꼭질을 하다 숨은 벽장 속에서 뒷걸음치다가 철퍼덕, 눈으로 뒤덮인 마법의 세계에 뒤로 자빠진 쪽에 가까웠다.
나는 한동안 진흙탕에 바퀴가 빠진 자동차처럼 굴었다. “왜 이렇게 안 나가!”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전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내면 낼수록 내 발 아래 놓인 웅덩이는 점점 깊어졌다. 나는 이곳에 멈춰서 있는데, 이 세상은 원래 제 속도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몸무게 3.4kg의 아기가 내 삶에 짓누르는 무게는 측정 불가였다. 아이는 나의 삶의 무게중심이 어디인지 계속해서 시험했고, 나는 매번 아이를 향해 미끄러졌다.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된 순간부터 겪은 일을 나는 비로소 세상에 나온 아이를 안고서야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급정거한 나의 눈앞에는 관성처럼 내 앞을 달려가는 다른 ‘나’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것은 내가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나의 생각, 욕망, 계획이었고, 그들과 내가 나란히 함께 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24시간 돌봐야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건, ‘시간 감옥’에 갇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일 벌리는 시간은 우는 아이를 안고, 업고, 똥 치우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밥 하고, 먹이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랑 놀고, 책 읽어주고, 낮잠, 밤잠 재우는 시간이 대체했다. 주말에 아내와 놀러 갈 곳을 찾고, 읽을 책을 고르고, 산책을 다녀오고, 보드게임을 하던 시간들은 멍하니 쇼츠를 보다가 아이 옆에서 곯아떨어지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해인이를 돌보면서, 비로소 내가 ‘표준시간’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하루 8시간, ‘나인 투 식스’. 주 40시간이라는 일정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표준시간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비행선 같은 물체다. 비행선은 유유히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지만 그의 시작은 바닥이었고, 언젠가 바닥에 착륙해야 한다. 우리는 부단히도 저 표준시간의 세계에 소속되려 애쓴다. 그리고 저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을 잔여의 존재로 인식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비행선 안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리가 아닌, 땅에서 비행선의 배를 올려다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무실, 공장, 건설 현장, 각종 사업장, 도로 위를 달리는 차에 있을 나인 투 식스(물론 다른 시간대에 일하는 이들도 상당하다)에 아이와 동네 골목을 쏘다니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면서 세계를 관찰하는 경험은 마치 어둠 속 세상에 잠입한 것과 같다.(환한 대낮의 동네 놀이터는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그림자가 지는 영역, 어둠의 시간, 비생산의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해인에게는 부모의 시간 감옥이 이 세상을 느끼고, 알아가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 안방의 작은 침대에서 시작된 그의 탐색은 지금은 어린이집으로까지 반경이 넓어져 있다. 해인이의 하루는 세상을 느끼고 그에 대해 표현하는 시간으로 충만하다. 요즘은 ‘심심한 시간’을 겪기 시작한 듯하다. 심심할 틈 없이 놀아줘야 한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으면, 어김없이 심심함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심심한 시간은 놀 거리가 없는 텅 빈 시간이 아닌 낯선 놀이 상대가 등장하기를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시간, 세상이 재미난 것들을 내게 반드시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는 시간이다. 나는 믿음이 굳건하지 않지만, 해인이 곁에서 시상을 기다리는 시인이 되어보기로 한다. 오늘은 놀이터 통나무집에 올라 앉아 낙엽을 잎맥을 따라 천천히 찢어 바람개비를 만들어 아래로 던지는 놀이를 했다. 해인이가 날 자빠뜨리지 않았다면 잃어버리고야 말았을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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