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집안일의 정치학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세상에는 수많은 일(work)들로 넘쳐난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불쉿잡(Bullshit Jobs)> 폭로한 것처럼 세상에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해악적이고, 철지난 권위주의의 옷깃을 세워주기 위한 ‘하나마나한 일’들도 넘쳐난다.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 가치를 스스로 폄훼하고, 냉소한다. 두 손 두 다리 멀쩡한 ‘회장님’이 차에서 내릴 때 차 문을 열어주는 이의 노동을 생각해보라.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아무리 많은 미사여구를 덧붙여보아도 일이고 노동이다. 다만 이 노동은 자본주의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육아를 하고, 아내와 육아, 집안일에 관한 수다와 토론, 그리고 논쟁을 하다 보면 육아와 집안일을 둘러싼 인류사의 정치의 계보가 우리의 대화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대개 돌봄은 타인의 분비물과 배설물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쉽게 얘기해서 아이의 침, 땀, 콧물 등을 닦아내고, 똥을 닦아내고, 싸지른 오줌, 그리고 아주 가끔씩 ‘토’를 훔쳐내는 일이 육아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똥오줌 묻은 기저귀를 처리하고, 옷과 이불을 빨고, 바닥을 닦고 등등의 일들은 그 연장선에 있는 일 목록이다.
이따금 이웃에 사는 동료 활동가의 개를 산책시키는데(그는 나의 유일한 개 친구이기도 하다.), 산책하는 도중 그의 대소변 배설 행위에 관여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종종했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어린이집 교사,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증언에도 똥, 오줌은 늘 등장하는 소재다. 다만 그 똥, 오줌의 주인이 갓난 기부터 노인, 비인간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뿐이다.
산후조리원에서 갓 태어난 해인이를 안고 나서 곧 ‘태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먹었던 것들을 바깥에서 배설하는 아기의 첫 번째 똥인 셈이다. 영광스럽게도 내가 두 손으로 그 태변을 받았는데 따뜻하고 초록색의 물컹물컹한 대변을 받을 때 느꼈던 몽글몽글한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막 태어난 아기가 사랑스러웠던 것도 있었겠지만 왈칵 쏟아진 태변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육아의 핵심 장면이 분비물과 배설물이라면 집안일의 핵심은 곰팡이가 아닌가 싶다.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은 하루 이틀이 지나면 꺼내보고 싶지도 않은 물체가 된다. 냉장고는 욕망과 게으름에 압도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무의식의 반영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반찬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고 싶지만 곰팡이는 기어이 자라나 하얗고 푸른 꽃을 피우며 현존을 내세운다.
‘대한곰팡이점검협회’에 따르면 세상은 곰팡이 포자로 뒤덮여있는 ‘곰팡이 왕국’이다. 곰팡이가 지구별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것. 유기물이 있고, 습기가 있다면 곰팡이는 그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다. 대부분의 곰팡이는 24~48시간 동안 수분이 공급되면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집안일이 지속가능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드는 일의 총합이라고 할 때 곰팡이는 이 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야기를 다시 쓴다. 아무리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먼지를 털어내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해도 물기를 제대로 닦아내지 않는다면 옷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고, 화장실 타일에 붉은 물곰팡이가 피고, 설거지 건조대 곳곳에도 붉은 물곰팡이가 핀다. 브리타 정수기 수도꼭지에는 거뭇한 물때가 나온다.
한 집의 맏아들로 살아온 나와 한 집의 맏딸로 살아온 아내 사이에는 육아와 집안일을 대하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나는 특히 곰팡이 처리 면에서는 거의 무능력자에 가까웠다. 곰팡이를 캐치하는 것도 그렇지만, 곰팡이를 처리할 생각도 하지 않아서 아내로부터 구박을 자주 들었다. 다른 사람보다 평균 이상으로 깔끔하다고 평가를 받는 나의 친모의 노동에 감사할 줄 모르고 의지해왔던 날들이 이렇게 타박으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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