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비혼주의자에 출산을 원치 않았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내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나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어떤 때에는 보호막이 되었지만, 어떤 때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폭력의 굴레였다. 나는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야 부모 사이의 끈질긴 갈등과 싸움의 정체에 대해 설명할 언어를 만날 수 있었다. 청소년기 나는 엄마의 입장을 정확히 옹호하지 못하였고, 아빠의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태도에 분명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아빠는 중학교 때 보은에서 서울로 유학을 가 대학까지 다녔는데, 종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셋째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었더랬다. 아빠는 학업을 하는 동안 미아리 고개 너머에 있는 집에서 시골에서 누리지 못한 ‘문명적’인 삶을 만끽하며 지냈다며 동생과 내 앞에서 추억에 잠기곤 했다. 보은에 살던 둘째 부인인 나의 할머니는 나중에 이 일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고, 정신병에 걸렸다. 아빠는 서울 엄마를 인간적으로 좋아했고, 보은 친모에 대해서는 깊은 연민을 가졌던 것 같다. 아빠는 결혼 이후에 ‘노망’난 친모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는데 할머니에 대한 실질적인 돌봄은 막내며느리, 나의 엄마의 몫이었다.
다른 이들과 우연히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196~70년대 가족사를 다룬 소설의 내용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자본주의가 여남 일대일 혼인과 자녀 출산을 모델로 하는 근대의 ‘가족’을 발명하였다고 하지만, 전쟁 후 국가 주도로 자본주의적 경제를 구축했던 시기 한국의 경제체제 제일 끝에 위치한 가족 현장에서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가부장제’였다.(1960~70년대 한국의 가부장제에 대해서는 더 집요한 추궁이 있어야 한다.) 어린 나에게 가족이란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이해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억압 속에서 만나게 된, 썩 유쾌하지 않은 권리와 의무 관계를 촉발시키는 이들이었다.
결혼하고, 그리고 해인을 낳으면서 ‘혈연’에 갇히는 삶을 살지 말자고 아내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눴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믿음과는 별개로, 경제적 공동운명체로서 ‘가족’을 구성하면 전혀 다른 차원의 질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가족 아닌 이들과의 관계 맺기의 가장 주요한 판단 근거 중 하나가 되고, 그 결과 많은 이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재정립되기 쉽다. 내부적으로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의 부’를 창출하기 위한 동업자이자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하도록 요구 받는다.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는 요즘 해인이 가장 많이 내뱉는 낱말이다. 모두 가족 누군가를 칭하는 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해인이의 존재는 미진과 나에게 ‘혈연’이라는 고무줄을 보기 좋게 넘나드는 일상을 선사해주고 있다. 가까운 동료들은 나이 불문 해인에게 ‘이모’, ‘삼촌’으로 통한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해인에게는 이모 일흔 일곱 명과 삼촌 서른 세 명이 있다. 해인이의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서만 열 명은 족히 넘는다. 미진과 내가 의식적으로 해인과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지지해주는 것도 있지만, 타인에게 웃으며 잘 다가가는 해인이의 성격이 큰 몫을 한다. 육아의 희노애락을 공유하면서 나와 주변 이웃, 동료들과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쌓아 올라가는 점도 재밌는 변화다.
해인과 지내면서 느끼는 점은, 더 많고 더 다양한 유사 가족의 출현이 직계 가족에 내재한 억압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부과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저항심이 깊지만 말이다. 여러 친밀한 관계들이 내 삶에 비집고 들어와 준 덕분에 살아있는 나의 엄마와 동생, 죽은 나의 아빠와 할머니를 떠올리고, 스스로를 성찰할 ‘공간’이 생겨나는 것 같다. 해인이가 지금처럼 풍성한 관계들 속에서, 마음껏 자기 삶을 누리며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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