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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시간제 보육을 맡기다

by 인권연대 숨 2026. 4. 27.
시간제 보육을 맡기다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고구마 같은 갓난아기를 집에 데려오고, 아기를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던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생후 6개월,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이 되자, 주변으로부터 어린이집은 언제 보내냐는 질문을 듣기 시작했다. 요즘 어린이집에 ‘0세 반개설은 기본이고, 어린이집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를 거는 일은, 태아보험 가입만큼이나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돌이 지나도록 우리가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놓지 않자, 주변의 질문은 경고로 어조가 바뀌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해인이가 세 살이 되기까지는 가능하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보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1년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귀하자 돌봄 노동이 아내에게로 쏠리게 되었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활용하여도 아내에게 육아의 무게가 실리는 구도를 바꿀 순 없었다.

이는 단순히 아내의 육아 부담이 커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병에 걸려 진로가 불투명해진 아내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건강을 회복하며 장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지가 당분간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세 살 까지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 발상이 얼마나 아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생각이었는지, 아내와 대화(말싸움)를 통해 깨달았고, 반성하며 아내에게 사과하였고, 생각을 바꾸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한창 부모와 애착을 맺고 지낼 시기에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긴 시간을 부모가 없는 환경에 아이를 맡기고 오는 것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었다. ‘굳이 아이가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겪게 하는 건 아닐까하는. 하지만 여기 굳이에는 육아와 집안일로 피폐해져가는 양육자들의 처지는 생략되어 있었다. 사실 누군들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서 보내겠나. 양육자들이 오롯이 부담하던 육아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그만큼의 변화와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감당하도록 하는 과정일 테다.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서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야한다”, “애들은 자기 아쉬운 것만 기억하지 잘해주는 건 그다지 기억을 못하더라는 육아 선배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도 있었다. 한쪽이 독박 육아를 하면 반드시 양육자 간의 갈등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타당한 얘기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해인이가 부쩍 커있었다. 그새 걸어다니는 것을 지나 거의 뛰어다니고 있었다. 바깥세상이 궁금해서 매일 밖에 나가자고 성화였고, 우리는 오전, 오후에 한 번씩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동네 골목, 놀이터, 가족센터, 어린이체험관, , 공원, 무심천, 할머니집, 카페, 도서관, 박물관, 학교 운동장, 대학교 캠퍼스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

내가 활동에 복귀하자 해인이에게 다양한 액티비티를 제공해야할 책임은 아내에게 집중되었다. 아내는 필사적으로 도서관, 가족센터, 장난감대여센터 홈페이지를 탐색하면서 해인이 월령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신청했다. 선착순으로 등록을 하는 프로그램들이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신청에 성공했다. 알고 보니 해인이 월령대 아이들은 대부분 어린이집을 다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을 다니면서 해인이는 즐거워했지만, 아내의 육아 강도는 결코 나아지진 않았다.

 

아내와 나는 당장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에 시간제 보육이라는 절충안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시간제 보육은 어린이집에 시간 단위로 맡기는 제도다. 시간제를 맡기면 시간제 보육 담당 선생님이 아이를 보살피고, 때때로 원생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최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시간제 보육을 맡기기 시작했는데 예상은 했지만, 해인이는 매우 잘 적응하고 있다. ‘키즈노트에 실린 밝게 웃고 있는 해인이 사진들을 보니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아내는 그 와중에 눈가에 눈물이 살짝 묻어있는 해인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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