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데리고 간 세상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침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아이는 어느덧 거실과 옷방, 서재, 부엌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로 자랐다. “이게 모야”는 “엄마”, “아빠”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내뱉은 첫 번째 단어였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검지로 허공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이게 모야”를 남발하는 아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보통 한 단어씩 이야기하다가 두 단어를 이어 붙여서 말한다는데.
“안녕”을 말하기 시작한 해인이는 사람 외에도 온갖 비인간 존재들을 향해서도, 그리고 (아마도) 보이지 않은 존재를 향해서도 “안녕”을 외치기 시작했다. “녕”이라는 발음이 꽤 어려운데도 곧잘 “안녕”이라 말했다. 해인이 덕분에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호기심이 많아진 아이와 집에만 있다 보니 함께 시간을 보낼만한 거리가 한계에 다다랐다. 걷지 못할 때는 그림책, 블록, 자동차, 장난감 악기, 병풍 책, 꼬꼬맘, 공, 풍선, 비눗방울… 갖가지 놀이감들을 다양하게 배치하면서 해인이와 놀았다. 몇몇 거점마다 있는 장난감 대여센터에서 미끄럼틀, 장난감 집, 오뚜기 등등 빌릴 수 있어서 아이의 흥미를 돋울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걷기 시작하니 아이의 관심은 저 베란다 밖의 세상, 그리고 마당 대문 너머의 세상을 향하기 시작했다.
해인이가 걷기 전에도 해인이를 안고서 혹은 유모차에 태우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타인을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해인이의 특기 덕분에 데리고 다닐 맛이 났다. “어머! 애가 웃네!”, “어쩜 이렇게 낯을 안 가릴까!” 이쁨받는 건 해인이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해인이 덕분에 나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얼떨결에 낯선 이들과 사뭇 진지한 대화까지도 나누게 된다. 육거리시장 상인들은 아기가 귀엽다고 말 그대로 떡 하나를 더 주었다. 해인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무심천을 천천히 달리고 있다가 마주친 할머니는 당신의 손주들과 자식 이야기를 꺼낸다. 낯선 이웃들과의 대화가 흔치 않은 요즘, 이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 대해 갖던 경계심이 조금은 옅어지고, 다양한 이들과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진해지는 것 같다. 해인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경험이다.
내년 1월이면 인권센터에서 일한 지 만으로 10년을 꽉 채우게 된다. 자신의 권리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떳떳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용기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이들과 대립하며 싸우는 날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알게 모르게 내 마음 한구석이 경직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로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대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함부로 재단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깜짝깜짝 놀랐다. 마음이 말랑말랑하던 어린 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태도가 내 몸에 배어있어서.
해인이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주려고 매번 외출한다고 생각했는데, 해인이가 나를 데리고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있는 건 아닌지 싶다. 아이들은 참으로 신기한 존재다. 인간의 발달 단계상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지만, 가장 취약하므로 낯선 이들을 끌어당기고, 말 걸도록 만든다. 해인이의 하회탈 눈웃음도 물론 한몫을 하지만.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환대를 베풀며 다가가는 해인의 눈짓과 몸짓이 내 마음 속 한구석을 간질간질 간지럽히는 듯하다.
지난주부터 해인이와 나는 동네 뒷골목 건너편에 있는 동네의 오랜 빌라를 하루걸러 다녀오고 있다. 대학교 캠퍼스 언덕 아랫자락에 있는 50년 된 ○○빌라에 50년 동안 살고 계신 ‘꽃 할머니’와 그의 친구 할머니들과 만나서 놀기 위해서다. 언제 한번 이분들과의 만남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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