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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육아기를 시작하며

by 인권연대 숨 2026. 3. 25.
육아기를 시작하며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5년이 지났다. 숨 소식지 <마음 거울>에 마지막으로 글을 실은 게 언제인지 숨 블로그를 찾아보니 20211겨울과 마당이라는 글이었다. 새로 이사 온 주택에서 맞이한 첫 겨울, 눈 쌓인 마당을 바라보며 가졌던 사색들이 추억처럼 돋아났다. 내친 김에 그 전에 썼던 글들도 읽어보았다. 당시 인권연대 숨 활동가였던 이와 연애와 결혼을 하고, 청주에 신혼집을 새롭게 얻었던 날까지 있었던 일들과 마음 풍경이 고스란히 글에 담겨있었다.
5년이 흐른 오늘, 나는 여전히 그와 함께 모충동 주택에 살고 있고, 같은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숨 회원이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세상에나! 아이의 출산은 여러모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출산의 당사자가 되는 일은 세상에 만연한 국가 기밀, 영업 비밀보다 더 비밀스럽고 보편적인 시공간에 초대받는 일이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배아가 만들어지고, 태아가 되고, 뼈와 기관들이 자라나고. 익히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이 현실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다. ‘새싹이는 엄마의 전신 두드러기와 함께 찾아왔다. 임신 테스트기에도 확인되지 않았을 때였다. 짝꿍의 온몸에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이질적인 존재. 새싹이는 그렇게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며 우리에게 찾아왔다. 20243. 봄이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까지 밀도 높은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었을까. 청년이 되면서 몸의 생장이 멈추고, 노화를 아주 느리게 겪고 있는 나이였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다를 정도로 빠른 신체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겪어내는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호르몬의 변화,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의 역동성도 대단했다. 계속해서 갱신되는 새로움에 적응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임신 준비부터 출산, 출산 이후까지 인위적인 고려와 개입이 상당 부분 이루어지는 행위들의 총합이었다. 새싹이의 경우 목에 탯줄을 두 번이나 감고 있었고, 전치 태반에 가까울 정도로 태반이 자궁 경부에 가까운 곳에 형성되어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시도하려고 교육을 받고 연습도 했는데 결국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수술 날짜를 잡아놓으니 곧 새싹이를 만나게 되겠구나, 실감이 났다. 새싹이를 기다리며 산책을 하고, , 허리, 골반, 다리, 발을 마사지하고, 대화를 나누는 평화를 누렸다. 그런데 수술 일주일 전 짝꿍이 발을 헛디뎌 크게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짝꿍은 뱃속 아기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얼굴과 어깨에 무게를 싣고 아스팔트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뒷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짝꿍의 상처는 단순한 찰과상에 그쳤고, 새싹이도 무사했다. 10개월이라는 시간은 경악과 경탄을 오가는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새싹이가 낸 첫 울음은 응애 응애가 아닌 깍깍깍!”에 가까웠다. 날카롭고 사납고 앙칼진 동물의 소리였다. 마취를 한 짝꿍이 기억하는 출산의 순간은 의료진들이 아이를 빼내기 위해 용쓰는 모습과 마취된 자신의 몸이 둔탁하게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을 쳐다보는 일이었다고 했다. 임신과 출산은 숭고하고 아름답다고만 하기엔 당혹스러운 일도 많았고, 때론 처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힘들기만 하진 않고 깨알같이 재밌고, 신기하고,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다.

새싹이에게 해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린아이 웃을 해, 풀이름 인. 부르고 싶은 소리를 먼저 정하고, 마음에 드는 뜻을 붙여주었다. 어린아이의 웃음과 풀이름은 세상에 가장 오래 남아있길 바라는 것들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풀이름을 기억하는 사회를 꿈꾸는 마음으로 육아 기록을 남긴다. 돌봄과 보살핌이 우리 삶에 가득 가득 피어오르길.

새싹이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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