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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일종의 유희

by 인권연대 숨 2026. 7. 24.
일종의 유희
잔디

 

 이제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막 설거지 하려던 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얼른 나가게 설거지 좀 해.” 단전에서 끓어올라 얼굴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어떤 감정. 내내 그 뜨거움으로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말가진 그릇을 바라보던 기억, 그 감정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애써 감추던 그 때의 나. 그리고 또 하나. 일요일 아침 여유로이 방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찾아 막 비질을 하려는 순간, 마루에서 들려오는 소리. “일요일이니까 대청소 좀 하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방 어딘가에 숨기고 나도 숨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는 마음. 그 마음을 숨기고 ”, 라고 대답하고 꾸역꾸역 비질을 하고 물걸레질을 하고나서야 말끔해진 방바닥에 누워 긴 한숨을 쉬었던 그 때의 나. 열 몇 살의 한 때가 군에 간 아들과 대화를 하다 문득 먼 기억 속에서 소환되었다.

 

 아들이 생활관에서 휴일에 일상적인 흐름을 타다가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라서 막 분리수거를 하러 가려 일어선 순간, 병장님이 때마침 분리수거를 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스스로 알아서 하려는 기쁘고 자유로운 마음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자율적으로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그 마음이 쭉 유지되면서 일이 마무리되면 참 홀가분 했을텐데 아쉽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곧 이어서 나의 두 가지 기억도 말했다. 그러다 우린 어느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만약에 우리가 무언가 막 하려고 마음먹거나 행동하려는 순간에 들려온 상대의 말이나 제안을 찌찌뽕으로 해석한다면 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에 대해서. “, 지금 설거지하려고 했는데 찌찌뽕이네.”, “! 지금 비질을 하고 있었어. 뽕찌찌 빨주노초파남보...하하하.”, “병장님, 지금 막 분리수거 하러 가려고 일어났습니다. 동시에 이렇게. 하하.”(겉으로 어색하다면, 마음속으로, 마음속으로라도...- 나 자신에게 제안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누구나 나의 가치를, 나의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고, 그 자유를 즐기기를 누구나 원하니깐. 그리고 이런 문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벼움을 원하니까. 삶에서 다가온 어떤 것이라도 가볍게, 나의 마음을 무겁지 않게 하면서도 삶에서 다가온 어떤 것을 맞이하고, 떠나보내고 하면서 나를 편안하게 하고 싶으니깐.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깐. 삶에서 찌찌뽕, 뽕찌찌 빨주노초파남보를 목소리로 혹은 마음의 목소리로 많이 말했으면 좋겠다라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를 재단하고, 판단하고 심지어 좋지 않은 평가를 스스로 하면서 자신을 눌러온 생각을 반복하면서(물론 그 생각들이 나를 지금까지 지켜주고, 살아오게 한 힘으로 작용하긴 하였으나...) 살아왔으니 이젠 그 단단한 패턴을 좀 다른 패턴으로 변형하여 나 자신과 명랑하고 가볍게 살아보아도 괜찮지 않을까에 대해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지금 있는 곳에서.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아들의 군 생활은 이분의 일 분기점을 곧 찍게 된다. 처음에는 하루 하루 날짜를 세어가면서(물론 지금도 날짜를 세긴 한다.) 스스로 정하진 않았지만 정해진 기간이 흘러가기는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하루하루 쌓여가는 시간들에 감사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엔 그 애는 세고 있지 않고, 언급하지 않지만 나만 혼자 세는 날도 있었다. 아들은 이 기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말을 때때로 하였는데, 어제는 시간이 참 빨리 간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에 담긴 불안에 대해서, 그 불안을 어떻게 읽어낼 지에 대해서로 대화는 이어졌다. 아직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던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입대를 했고, 군생활 하는 동안 여러 경험을 겪으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걸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용사로서 본인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충실히 해야 할 것을 열심히 성실히 해나가면서도 자신이 실수할까봐 자주 긴장하고, 걱정하는 최우수 용사인 아들에게 우리는 언젠가 다 잘 될 거야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최우수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실수한다는 문장도 위로가 되려면 타이밍이 중요하였다. 나로서는 진정으로 한 공감이 아들에게는 설득으로 다가가 아쉬운 대화로 통화가 마무리될 때, 다음 통화나 톡을 주고받을 시간이 될 때까지 마음만 쓰는 날들도 있었다. 공감해야만 한다는 욕심 부리지 않고, 그곳에서 아들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하는 나의 두려움도 잠시 두고 아들의 이야기를 두렵구나, 인정을 원하는구나, 이 실수가 계속 될까봐 상대들이 자신에게 기대를 하지 않을까봐 걱정이구나, 좀 더 유능한 자신이 되고 싶구나, 이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구나에 머무르며 아들의 말과 마음에 집중하였고, 엄마가 걱정할까봐 이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뻔 했어, 라는 문장이 어느새 사라졌다.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안전하다고 본다.

 

 아들은 전역 후 무얼 하면서 살고 싶은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하곤 하지만, 두려움에 대해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아들이 지켜주는 나라 안에 있는 나는 아들을 지켜주는 안전한 가로등으로 있고 싶다.

창가에서 보이는 초등학교가 무척 조용하다. 오늘은 여름방학 돌봄 교실도 방학인가 보다. 새삼 조용함을 느끼는 것은 그곳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함성이나 대화 소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일종의 유희를 하듯 내가 뭐라 그러나...하며 들여다보는 놀이를 즐길 수 있다면 어떨까? 문득 빗속에도 들려오는 매미 소리 따라 심장에 손을 얹고 매미의 리듬과 내 심장의 리듬, 그리고 삶의 운율과 가만히 춤추는 나를 보는 놀이로써의 놀이. 여름이니깐 가능한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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