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잔디
풀벌레 소리가 아직 서늘하지 않은 밤공기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것 같은 밤. 별빛이 소리를 낸다면 지금 계절의 풀벌레소리일까?... 오늘은 언니랑 간단히 톡을 몇 번의 턴으로 마무리하였다. 회사에서 본인이 우선 솔선하여 공동체에 기여하는 행동을 하고, 얼마 정도는 서로가 기여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너무나 진취적인 언니가 느끼는 답답함에 대해서, 어쩌면 지금의 언니는 자신의 진취적인 모습에 대해 반복하여 겪게되는 이 감정이 나의 어떤 강한 신념 때문이기도 한 걸까? 잠시 멈추어 생각하게 되는 그런 언니만의 사유의 계절...
퇴근하다 언니랑 나는 가끔 수다를 한다.(물론 매우 답답하거나 허기가 질 때엔 낮에 잠시 전화를 하기도 하지만...) 언니는 언니의 집으로,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니는 언니의 일상에서 누린 기쁨과 아쉬움을, 나는 나의 일상에서 누린 즐거움과 슬픔을 주절주절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때조차 하루 중 겪은 무언가를 언니의 집 마당에 들어설 때까지, 나는 나의 집 마당에 주차를 마칠 때까지...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렇게 흘러갈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먼저 집에 도착한 언니가 퇴근해? 라고 말하며 벌써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낸 한가로운 사람처럼 이야기를 걸어올 때도 있다. 때론 김밥이나 떡볶이를 공수해 언니가 있는 곳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한 시간을 달려와 또 잊혀질 이야기를 막, 막, 막 이야기하다 점심시간이 15분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처럼 왜 이리 시간이 빨리 지나갔지? 하며, 회사 1층 카페에서 각자의 커피를 주문하여 한 잔씩 들고 기어이 수박 한 통을 나의 차에 실어주고, 기약도 없이 헤어진다. 고마운 사람이여...
마주 앉아 이야기하여도 전화로 목소리만으로 이야기하여도, 또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느라 한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 불현듯 연락이 닿아도, 어제 만났던 사람인 듯 친근한 사이로 언제부터 지내왔을까? 언니를 만난 것은 스물 중반쯤. 모임 자리에서 본 언니는 대화면 대화, 일이면 일, 회의면 회의를 나무늘보 닮은 나와는 달리, 재빠른 토끼처럼 무엇이든 해내었다. 나는 그냥 언니 뒤에 서서 따라다니며 눈치껏 배우고, 언니를 모델링 삼아 따라 한 듯하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 온 언니를 커다란 산처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도 그저 스물 몇 살의 청년이었을 뿐인데... 그때의 언니는 언니의 수입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동생들의 후원자로서 살아가면서도 한껏 미소를 짓는, 호탕한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대인배의 면모는 내가 따라 하려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런 배포의 사람. 거의 나의 시간의 삼십 년이란 시간 속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이구나 새삼 생각하게 된다. 모임을 함께 하고,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자라나는 동안 가끔 만나고, 그 아이들 중 큰 아이가 서른 가까운 나이의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애쓴 언니의 시간을 내가 모두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견뎌온 시간들이 언니의 가슴속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늘 웃으려 노력하여 늘 웃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를 고통과 슬픔에 대해, 언니를 통해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웃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웃음이 그 사람의 마음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치만 그 웃음이 또 언니를 여기까지 모시고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웃고 싶지 않을 때에는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언니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기를 바라게도 된다. 슬퍼도 웃고,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웃고, 무안할 때에도 웃고, 힘들게 달리면서도 웃고, 아픈 데 병원에 혼자 운전하여 가면서도 웃고, 웃길 때에는 더 크게 웃고... 언니 이제 우리, 진짜 진짜 웃기거나 웃고 싶을 때에만 웃자...^^.

애써 공들인 시간들이 빛을 발하나 싶다가도 공들인 것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방향을 틀어 다른 빛깔을 보여주는 것이 삶이라 하더라도 언니는 삶의 맷돌을 돌려 고통을 고운 가루로 갈아 웃음을 넣어 반죽하여 옹심이로 만들어 뜨거운 국물에 넣고 끓여 자신도 먹고, 사람들도 먹이며 또 한껏 웃는다. 텃밭에서 온갖 것을 길러 사람을 먹이고, 나누어 주고, 산더미 같은 김장을 하고, 끙끙 앓아누워도 그것을 반복해 온 언니는 언니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맷돌 돌리기를 오늘도 했을 것이다. 어제도 해 온 일을 오늘도 했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언니이니까. 내가 지금 바라보는 언니가 예전의 언니보다 가벼워서 나는 좋다. 시간을 내어 언니만을 위한 바느질을 하는 언니가 예쁘다. 언니에게 예쁜 옷을 입혀주는 언니가 좋고, 언니에게 언니랑 닮은 차를 사주고 그 차를 타고 또 나를 만나러 와서 도서관 옆에 길게 놓인 자연석 의자에 앉아 아주 잠시 커피 한 잔 하고 헤어지더라도 그렇게라도 만나고 얼굴 보는 우리가 좋다. 보고 싶어하는 마음만 키우면서 시간의 맷돌이 닳지 않도록,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서 지내는 지금의 우리가 좋다. 눈물겨운 시간을 지나 여기에 온 우리가 좋다. 눈물겨운 시간을 살아낸 것이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우리의 이웃들도 저마다 자신의 삶의 맷돌을 힘겹게 돌리면서도 웃고 있다는 걸 우리가 지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그냥 언니의 웃음 소리가, 웃는 모습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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