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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

봉순이는

by 인권연대 숨 2026. 7. 24.
봉순이는
박현경(화가, 교사)

 

봉순이는 고등어다. 우리 집에 사는 코리안숏헤어 고등어 고양이다. 이마 아래 얼굴과 옆구리와 네 다리와 발은 하얗다. 이마 위쪽으로 두 귀와 뒤통수를 지나 등허리를 거쳐서 길고 우아한 꼬리까지는 고등어 등 색깔이다. 분홍 코 양옆으론 엷은 갈색 반점이 있다. 수염은 하얗고 길고 빳빳하다. 눈동자는 에메랄드 빛깔이다.

 

봉순이는 2020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사창동 어느 골목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4개월쯤 됐을 때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골반을 다쳤다. 구조돼서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됐다. 우리 집엔 기다란 회색 털을 지닌 페르시아 귀족 혈통 왕순이가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다.

 

귀부인 왕순이를 처음 봤을 때 꾀죄죄한 봉순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먼 이국 땅에서 동족을 발견한 기쁨이랄까. 그러나 왕순이는 봉순이를 동족이 아니라 침입자로 생각했다. 혈통묘 아줌마 왕순이는 노숙묘 출신 꼬마 봉순이에게 자꾸 하악대고 회오리 펀치를 날려 댔다. 왕순이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봉순이는 왕순이를 좋아했다. 언제나 왕순이랑 친해지고 싶은 티가 줄줄 나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몇 년이 흘러 지금은 다행히 왕순이가 봉순이를 친구 또는 동거묘 정도로 인정해 주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 봉순이는 밀당도 모르는 순진한 사랑꾼이다. 왕순이한테뿐만이 아니다. 내게도 마구 한없이 들이댄다. 내 뺨에 제 이마를 쿵쿵 부딪치고 문질러 내 얼굴을 털밭으로 만들고 그 작은 콧구멍으로 콧김을 내뿜어 가며 킁킁대서 내 살냄새를 맡고 제 분홍 혀끝으로 내 입술을 할짝할짝 핥아 준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면 작업 중인 내 오른손을 깔고 앉고, 내가 아이패드로 일을 시작하면 키보드를 깔고 앉아 내게 얼굴을 들이민다. 이렇게 봉순이가 나를 방해하는 건 나를 몹시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도 자기를 좀 사랑해 달라는 뜻이다.

 

나는 봉순이를 조금도 나무랄 수 없다. 왜냐하면 봉순이가 하는 짓이 나 자신과 너무나 똑같기 때문이다. 나도 봉순이처럼 물정 없이 사랑을 한다. 밀당 같은 걸 하기엔 애당초 글러 먹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어렸던 시절부터 마흔한 살인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아예 사랑하지 않은 적은 있어도 계산하면서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계산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도 계산이란 걸 제발 좀 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계산 같은 걸 전혀 할 줄 모르는 이상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난 언제나 사랑에 흠뻑 빠졌다. 질식할 정도로 풍덩 뛰어들었다. 내가 주는 마음의 크기는 상대방에게서 받는 마음의 크기보다 언제나 컸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늘 무한대만큼 우주만큼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나는 왜 덜 사랑하지 못할까. 나는 왜 늘 더 사랑하는 역할일까. 나는 왜 늘 밑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물정 없이, 계산 없이, 아낌없이, 한없이 사랑했기에 그만큼 삶을 충만하게 체험해 왔다는 것을. 숱한 쓰라림의 밤을 건너, 셀 수 없는 회한의 날을 지나, 이제는 안다. 이제야 겨우, 조금 덜 억울하다.

 

내 동생 봉순이는 나를 꼭 닮았다. 걸음걸이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도 눈빛도 나랑 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진한 사랑꾼인 게 닮았다. 그래서 나는 봉순이의 들이댐이 눈물 나게 고맙고 사랑스럽다. 봉순이가 들이대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봉순이를 털끝만큼도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너무 많이 겪은 그 서운함을 내 동생 봉순이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림_박현경,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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