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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62호> 나눔에 대하여_이영희(회원, 원영한의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9. 26.

일터 옥상에는 제법 큼직한 화단이 세 개가 있다. 이곳에 자리잡은 이듬해 봄, 옆지기는 재미난 일을 계획했다. 그것은 바로 화단을 가꾸는 일. 말이 <화단>이지 황폐한 공터라는 게 더 어울릴 곳이었다. 첫해에는 당귀모종과 허브(라벤더, 로즈마리, 스피아민트, 애플민트), 국화와 백일홍, 상추모종을 심었다. 높은 건물 옥상이다 보니 바람도 강하게 부는데다 흙에 양분도 없어 아이들이 시들시들 맥을 못췄다. 그래도 꿋꿋이 견뎌낸 아이들로 인해 여름 한 철 질리도록 상추를 따먹고, 새들의 공격으로 매번 꽃봉오리가 잘려나가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런대로 꽃구경도 할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농사(라 하기엔 많이 민망할 지경이지만)는 처음인지라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는 저 화단에 심어진 아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무척 고민스러웠다. 허브 종류는 한 포기씩 캐다가 한의원으로 옮겨 놓고, 미처 먹지 못한 시금치는 그냥 버려두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찾아온 봄.

 

 

계절이 오고가는 걸 미처 모르고 있던 어느 날, 옥상에 올라갔다 그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지난 겨울 버려두었던 시금치가 통통하니 살아 있는 게 아닌가. 겨울 시금치는 남녘에서나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대견했다. (요 아이들은 샐러드로 매일 밥상 위에 올라왔다). 신기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씨를 받기 위해 말려 둔 상추 대를 바람 부는 날 옥상에서 툴툴 털었는데, 언젠가부터 화단을 점령해 버린 것이다. 올라오는 양이 어마어마해서 그날부터 상추와의 행복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시간 날 때마다 올라가 상추를 솎아내고, 제법 큰 상추는 다듬어서 한의원에 오는 분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도 처음엔 아깝다는 생각이 앞섰다. <내 것><너에게> 준다는 마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나눔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욕심내던 마음이 차차 사라졌다. 겨우 상추 한 봉지를 건네는 건데도 말이다. 사실 건네는 행위 말고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오가는 이야기와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는 웃음이 그것이다. 그러니 나눔이 반복될수록 행복하고 평화로워지는 거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 않을까, 이왕 나누는 것, 더 크고 싱싱한 것으로 챙기게 되고, 깨끗하게 씻어서 담게 된다. 나눔도 습관인지 하면 할수록 더 기분 좋아지고 부자가 되는 것 같다. 산술적으로 보자면 가지고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것인데, 거기에서 행복함을 느끼다니... 사는 게 참 재밌다. 예전에 좋아하는 과자를 동생에게 나눠 준다고 기특하다 칭찬했더니 아들이 했던 말이 있다. “엄마가 그랬잖아요. 비워야지 다시 채워진다고.” , 내가 왜 아이에게 그런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진 않았지만, 난 아무 소리 못하고 아들에게 과자 한 봉지를 사다가 안겨 줬었다.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이었을 텐데, 이제 보니 그 말이 참말이구나. 비워낼수록 채워지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게 꼭 상추(?)가 아니더라도.

 

 

요즘엔 스피아민트 잎을 따서 차를 만들고 있다. 햇빛과 바람의 힘이 이렇게 위대한 건가, 요놈들 아주 무섭게 크고 있다. 내가 필요한 건 딱 지퍼 백 하나 분량이니 나머지는 또 주인을 찾아가겠지. 그나저나 귀농이 꿈인 옆지기는 1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 깨달은 게 있단다. 농사는 장난이 아니란다. 그래서 작은 텃밭이 있는 집을 사서 좋아하는 약초 몇 포기, 나무 몇 그루, 꽃 몇 송이 심고 그렇게 사는 걸로 꿈을 수정했다. 여튼, 옆지기 덕에 우리 건물 옥상은 자꾸만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이 되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바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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