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친구가 우리 집에서 생활한지 며칠이 지났다. 하룻밤 자고 가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이번처럼 오래 있기는 처음이다. 갈아입을 옷도 챙기지 않고 온 걸 보니 ‘뭔 일이 있겠구나’ 짐작만 할 뿐, 물어보지는 않았다.
“치킨 시켰는데, 우리 맥주나 한잔 할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왜 우리 아빠는 저한테 아빠가 원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거에요? 임용고시 준비할 때는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하니 그때부터 사람 취급을 안해요. 집에서 저는 투명인간이에요. 지난 1년 동안 아빠는 제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무시해요. 엄마한테는 ‘애를 저 딴 식으로 키웠느냐’고 막말을 하세요. 호적을 파겠대요. 나가 버리래요. 그래서 나왔어요. 책상 위에 책 딱 펼쳐 놓고.”
“경아는 뭐라고 조언해 줬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어요. 성인이잖아요.”
그리고 아이가 했던 말,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면 되요.”
선택에 대한 책임, 이 말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아이는 잘 알고 있다. 고2 여름, 아이가 갑자기 청주로 전학을 가겠다고(우린 울산에 살고 있었다) 선언했다. 전학을 가야 할 이유는 열 가지도 넘었다. “엄마 아빠는 여기서 그냥 학교를 다녔으면 싶은데, 너는 싫다는 거구나? 그렇게 하자. 대신 기억해. 선택에는 꼭 책임이 따른다는 거.” 아이는 그렇게 혼자 객지생활을 시작했다. 딱 한 번, 집에 와서 품에 안긴 채 눈물을 뚝뚝 흘린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나고서야 아이가 이야기를 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그 때 배웠어요. 그 말 때문에 힘들단 내색도 못했어요.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냈죠. 후회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 당했다, 사고치고 도망 왔다... 온갖 거짓소문으로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을 친구 없이 혼자 지내야 했던 것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뚜렛 증상이 심해진 아이는 반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겨울에도 복도에 나와 공부를 했단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려고 열심히 살았어요. 그래서 단단해졌고요. 이제 어떤 일이 닥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식을 위해서>라는 말에 <자식>은 <나>이기도 하다. 편하고 안정된 삶이라는 것도 내가 가보지 못했던 길,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자녀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자기 삶을 대변해 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나이 들면서 점점 자식 자랑에 집중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제시하는 삶은 그들이 살아온 삶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내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어머니가 바랐던 삶을 매번 거부했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내 삶이 힘들어졌나 하면 꼭 그렇진 않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보니 어느 게 좋고 나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아쉬움과 후회는 남는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충분히 찾아야 한다는 것. 산다는 건 선택의 연속이고 이것은 배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게 내 아이의 선택이라면 더욱 그렇다. 마음 졸이면서 바라보는 사랑, 냉정한 사랑, 이것도 사랑이다.
* 그 친구, 맥주 한잔 한 다음 날 집을 나갔다. 며칠 잠수를 타더니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하기로 했다며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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