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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62호> 시골에서 똥냄새가 안 나면 어디서 나란 말인가?_이병관(회원,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9. 26.

휴일 아침 늦잠을 자고 볼일을 보러 나가려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다. 인근에 축사가 건립되려고 해서 반대서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냥 지나치려다 서명을 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이나 박근혜 탄핵을 위해 길거리 서명을 할 때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한테 서운했던 생각도 났고, 또 더운 날 땀 흘리며 서명 받으러 다니는 직원의 모습이 왠지 처량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축사를 딱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그렇다고 적극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고...) 우리 아파트가 시골에 있다고 표현하면 주민들이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행정구역이야 어떻든 길 건너에 논밭이 있기 때문에 시골 인근에 있는 아파트는 맞다. 그리고 처음 분양할 때도 이렇게 농촌과 인접하여 자연환경이 쾌적하단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여기에 사람들의 심각한 착각 내지는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 농촌이 쾌적한 자연환경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던가? 농촌 들녘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창밖으로 내다보며 즐기는 액자 속 그림이 아니고, 현실 세계의 자연은 그 자체로 쾌적했던 적이 지금도 과거에도 없었다. 아무리 기계화가 되었어도 농촌은 땡볕 아래서 땀 흘리며 고생하는 노동현장이고, 거름을 뿌리고 온갖 가축을 사육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냄새가 난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고기를 마구 먹어대는 한 대규모 축사는 어딘가에는 지어져야 한다. 그런 축사를 도심 한 복판에 지으란 말인가, 어디 산꼭대기에 지으란 말인가? 결국 농촌 어딘가에 지을 수밖에 없다. 오늘도 어떤 연예인이 광고하는 후라이드 치킨을 먹을까 고민하고, 퇴근 후 삼겹살에 쐬주 한잔 하면서 축사 건립을 반대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사실 지금도 우리 아파트 인근에는 축사가 있다. 아주 가까운 건 아니라서 늘 냄새가 나는 건 아니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가끔씩 축사 특유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봄철 같은 특정 시기가 되면 논밭에 뿌린 거름 냄새가 심할 때도 있다. 나도 이런 냄새가 썩 유쾌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농촌 인근의 아파트라서 일종의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런 냄새가 싫으면 처음부터 농촌 근처로 오면 안 된다. 시골에서 똥냄새가 안 나면 도대체 어디서 나란 말인가?
혹자는 축사가 대규모라서 특히 더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싫어하는 거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꼭 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축사를 반대한다. 그런데 축사가 대규모가 되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원래 각각의 가정집에서 키우던 가축들을, 누군가 한 데 모아서 대신 키운다는 뜻이다. 예전엔 가축을 가정집 마당이나 우리에서 키우고 잡아먹었다. 매일 가축 똥 치우는 게 일이었고 냄새도 많이 났고, 집 옆에 똥무더기가 있으니까 파리와 해충으로 고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가축을 직접 키우지 않고 누군가 대신 키우게 되면서 생명에 대한 인식도 바뀐 듯하다. 예전엔 내가 고기를 먹기 위해선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고기를 생명체가 아니라 사고 파는 상품으로 인식한다. 또한 죽어 마땅한 동물과 죽으면 슬픈 동물로 나뉘게 되었다. 감히 가축 따위와 반려동물을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그렇게 동물의 배설물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집안에서 동물을 키우고 손수 똥오줌 치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집안에서 반려동물이 직접 배설하는 것과 멀리서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것 중 무엇이 더 불쾌할까? 쾌적한 주거환경의 정체가 아리송해진다.


쾌적함, 편리함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세상은 자연 그대로 둔다고 저절로 쾌적해지거나 편리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쾌적하고 편리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인공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만 취하고, 그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발생한 나쁜 것은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자세, 이런 게 탐욕이 아니라면 우리가 비판하는 탐욕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는 오늘도 누군가 키운 생명체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축사 냄새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아침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기 때문에 물을 데우기 위해 발생한 오염물질을 숨 쉬며 들이마시는 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병관 #시골에서똥냄새가안나면어디서나란말인가 #살며사랑하며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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