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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61호> 나는 너 때문에 불행하다 _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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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화를 읽으며 이해가 안 가는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 예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은 없지?”

 

백설공주의 계모는 왜 거울에게 누가 제일 예쁜지 일일이 물어보고, 번거롭게 노파로 변장하여 독이 든 사과를 먹이러 가야했을까요? ‘마법의 거울은 멀리 떨어진 백설공주의 외모를 파악할 능력은 있으면서 어째서 계모의 외모를 백설공주보다 더 예쁘게 만들지 못했을까요? 어차피 비현실적인 마법인데 그냥 계모를 예쁘게 해도 될 텐데동화뿐 아니라 판타지 작품도 잘 보면, 다른 건 다 할 수 있는 마법인데 유독 외모만큼은 예쁘게 바꾸질 못합니다. 오히려 외모를 흉측하게 하는 저주는 존재하고, 온갖 역경을 극복하여 그런 저주를 풀어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입니다. 물론 작품을 만드는 사람 입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예뻐지면 재미가 없고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요.

 

예뻐지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미()가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예쁜지 아닌지는 그 사람 혼자의 절대미모로 결정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마법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그 자체는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행복 역시 남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어디까지가 행복이고 어디까지가 불행인지 판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고민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잘 먹고 가장 좋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마 역대 왕들보다 더 잘 먹고 있을 겁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고기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고기를 안 먹는 게 더 힘들 정도입니다. 지난 5월 초 황금연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나서 건국 이래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고, 힘들어 죽겠다고 합니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빈부격차, 양극화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쟤보다 내가 못살아서 불행한 것이지, 내가 밥을 굶어서 불행한 것은 아니지요. 정의로운 분들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 때문에 우리가 불행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는 그런 이유 때문에 불행한 것일까요?

 

빈부격차가 재벌과 서민 사이에서만 발생하면 고민할 일이 별로 없을 겁니다. 부모세대를 불행하게 했던 것들 중 상당수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민주화도 되었고, 기업도 많아졌고, 대학도 쉽게 진학하고, 밥도 안 굶고 등등. 그럼에도 자녀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와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벌과 서민만 출발점이 다른 게 아니라, 부모와 자녀도 다릅니다.

 

제가 어릴 때는 특별한 날에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얘기했었지요? 지금은 도시가스를 사용하지만 어릴 때는 아궁이에 장작을 땠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지금 태어난 세대에게 하면 공감이 될까요? 그래도 저는 점점 더 좋은 먹거리와 에너지를 얻는 성취감이라도 느껴보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고기 먹고 도시가스 쓰는 사람들은 앞으로 무얼 더 얻어야 행복해 질까요? 남 얘기 할 것도 없이, 저 자신 역시 장작 때다 연탄, 석유를 거쳐 도시가스를 사용하게 되었고, 고기도 맘껏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일까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계모가 마법의 원리를 잘 파악했더라면, 백설공주보다 더 예뻐질 수 없다면 발상의 전환을 하여 백설공주를 흉측하게 만들어 달라고 마법의 거울에게 부탁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계모는 행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나는 나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너 때문에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병관 #나는너때문에불행하다 #살며사랑하며 #제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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