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애저녁부터 고통 속에 파묻혀 있었다. 어딜 가나 못돼먹은 인간들은 있었고 꽤 많은 인간들은 괴롭힘을 당하며 지옥 같은 삶을 견뎌내야 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든 거대 선박에 태워져 노예로 팔려갔다. 가서 푼돈도 받지 못하고 고된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중 스페인 선박을 타고 온 흑인들은 쿠바라는 스페인 식민지이자 섬나라에 내렸다. 그들은 사탕수수를 베고 설탕을 만들어 자신들이 타고 온 선박과 비슷한 배에 자루째 싣어야했다. 미국으로, 유럽으로 떠나갈 설탕들이었다. 설탕의 맛은 노예들이 처한 고된 노동과 가난과 비례하듯 달콤했다.
사는 일의 고달픔에 관해서는 사실 지구 반대편인 쿠바까지 갈 필요도 없다. 어제 오늘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사실 내가 인생의 고통과 함께 쿠바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고통을 대하는 쿠바인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그려보고 싶어서이다. 더 정확하게는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 아디오스>을 통해서 본 쿠바인들의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원주민 타이노족들은 대부분 학살당했다. 얼마 뒤 스페인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데려와 노동 착취의 도구로 삼았다. 이런 사나운 시기에도 사람은 서로 사랑했고 아기들을 낳았다. 흑인 노예와 백인 주인 딸이랑 눈이 맞아서 아이를 낳고, 이웃집 원주민 출신 여자와 흑인 노예가 만나서 아이를 낳고, 사람들은 계속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은 아이만 낳은 게 아니라 각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혼을 물려주기도 했다. 특히 타이노족은 음악으로 유명한 원주민이었다. 거기에 스페인의 민속음악과 흑인들의 가슴 저린 소울까지 덧붙여졌다. 그들의 음악은 삶에 녹진하게 달라붙어 있는 비애를 담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한 때 전성기를 누렸거나 그 옆에서 코러스를 담당했던 나이 60-70대 실력자들이 1996년에 어느 지역 사교클럽의 이름을 달고 그룹을 결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이 그룹이 전 세계의 호응을 얻던 시기에 독일 감독 빔 벤더스가 제작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년)이 상영되고 약 18년 뒤에 미국 감독 루시가 내어놓은 작품이다. 짐작하겠지만 대부분의 원년멤버들이 죽은 다음이었고 자연스럽게 영화의 말미에는 그들의 죽음과 남겨진 이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영화의 부제가 아디오스다.
60-70대 노인들이 녹슬어가던 재능들을 다시 살려내어 그룹을 만들고 누군가를 유혹하고 춤추기 위해 손을 건네는 장면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들은 영화 중간 중간 반복해서 말했다. 죽는 그 날까지 노래를 부르겠다고, 피아노를 칠 것이라고. 이처럼 인간다운 고백을 최근에 나는 들었던가. 그들은 인간의 유한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노래하고 춤출 수만 있다면 만족스러운...
영화가 끝나고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치인이 생각났다. 처음엔 그의 죽음보다 그의 죽음에 관한 말들이 가슴을 찔러대느라 그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조차 어려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찾아온 참담한 감각은 그가 마치 짜여진 각본대로, 마치 그 길만 남아있는 사람처럼 곧바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에게 분노와 슬픔 이전에 상당한 허망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권변호사, 3선 서울시장, 대권주자 등등의 대단한 딱지들로 구성된 사회적 자아와 목숨 하나 겨우 부지하며 살아가는, 벌거벗은 인간으로서의 삶 사이의 간극이 어지럽게 다가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 역시 그와 같은 삶을 지향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정말 운 좋게도 “완벽한 인간되기“ 경주에서 이탈해서 내 몸과 내 숨을 찾아가는 길목에 서 있다. 무리하게 힘을 들이거나 욕심 부리지 않는 길을 골라본다. 예전 누군가 알려준대로 ‘몸이 주는 정직한 신호’에 귀를 기울여본다. 몸을 충분히 느끼면 춤이 된다. 숨을 충분히 내쉬니 노래가 된다. 어린이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다 아는 진실... 아, 흙먼지 날리는 쿠바 산티아고 언덕길에 석양이 지고 기타 연주와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춤추는 발자국 소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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