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동안 세상과 사람들을 원망하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분명 이게 옳아 보이는데 말을 하면 벽에다 얘기하는 것 같고, 얘기를 하면 할수록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속이 아팠지만 그럴 때 마다 ‘저 사람들도 언젠가는 내 얘기를 인정하고 통할 때가 오겠지’ 하는 마음이 일며 더욱 고집스럽게 거침없이 이야기 해 왔습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멀어져 가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흥분은 커지고, 고집은 더욱 강하고 단단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몇 년 전, 딸 아이 공부를 봐주다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은 딸에게 ‘집중해’하고 크게 소리 친 일이 있었습니다. 순간 딸아이의 몸이 바짝 움츠러들며 기가 질려 있는 모습이 눈 앞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바로 ‘미안해, 아빠가 화를 못 참았구나’ 사과하고 밖으로 나와 한참 하늘을 보았습니다. 아!! 나는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생각이나 입장을 고려하며 통할 생각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말만 쏟아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또 내가 속에 갖고 있던 사람에 대한 생각과 인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분석하며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너무 쉽게 단정하여 말하는 못된 버릇이 있구나! 지금껏 내가 해 온 수많은 말들이 분석적, 논리적일지 몰라도 혼자 떠드는 소리였지,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진정한 ‘대화’는 아니었구나.
그날 제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 간 것은 그 분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내 얘기만 하는 내 못된 말버릇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사람과 사람을 서로 통하게 하는 ‘숨’과 ‘말’을 하지 못하고 나를 드러내고 심지어 사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오다니. 그러고도 ‘나의 논리적인 이야기에 어떤 얘기나 반박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혼자 우쭐해 하며 제 잘난 줄만 알고 살아왔습니다.
딸아이에게 배운 그날 이후, 몸에 옹이가 박힐 대로 박힌 나의 못된 말버릇을 고쳐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끌어안는 말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하루하루 연습합니다. 무엇보다 사람과 이야기 할 때, 기(氣)가 안 막히도록 먼저 잘 듣고 받아들이고, 나의 말도 듣는 사람이 흔쾌히 받아들을 수 있도록 가다듬어 말하는 존중과 공유의 말버릇을 들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내 생각의 옮음이나 논리를 펼 때 이야기하는 ‘나는’ 하는 말버릇을 버리고, 서로 소통하고 할 일을 함께 찾는 사회적인 말버릇을 들이려 훈련합니다. ‘서로 기가 통하여 우리가 만들어지는 말버릇들이기’, 비록 작은 혁명이지만 그동안 내가 만났던 분들께 잘못을 갚고, 나부터 시작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인권을 지키는 일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사회적 공동체 만들기 운동’도 제대로 말하기부터 훈련하고 시작했다면 지금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십여 년 동안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헤매던 나의 말버릇을 깊이 볼 수 있게 해준 딸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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