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그는 늘 최전선에 있다
후주 무제 쳐들어올 때는 비사들에 있었고
신라와 맞설 때는 죽령으로 달려갔다
그는 왕의 신임을 받는 부마였지만
궁궐 편안한 의자 곁에 있지 않았다
그는 늘 최전선에 있다가
최전선에서 죽었다
권력의 핵심 가까이에서 권력을 나누는 일과
권력을 차지하는 일로 머리를 싸매지 않았다
높은 곳 쳐다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안락하고 기름진 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험한 산기슭을 선택했다
그때 궁궐 한가운데 있던 이들
단 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천 년 넘도록 우리가 온달을 기억하는 건
평강공주의 고집과 눈물 때문 아니다
가장 안온한 자리를 버리고
참으로 바보같이 가장 험한 곳
가장 낮은 곳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가 목숨 던져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 - 슬픔의 뿌리, 실천문학사, 2002)
• 그래도 바보처럼 살자고 독촉합니다.
지난 선거 이후 저는 마음 한구석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10년 넘게 당원으로 있는 정당이 13개 국회의원 자리를 얻었지만, 지금까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숨을 넘어 절망의 상태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하루 빨리 문제가 개선되기를 바라며, 바보처럼 신문 방송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오늘과 내일은 새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 달라질 것이라 바보처럼 믿고 살자고 스스로에게 독촉합니다.
• 매일 바보처럼 살자고 독촉합니다.
한 때는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하면 세상이 변할거라 바보처럼 믿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다수가 되지 못한 소수의 인원으로 무얼 해보겠냐는 말로 자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정당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내부의 살벌한 경쟁과 선거방식으로 선택되어 저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민중의 자리와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선거가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 뽑는 게 아니라, 기쁨이 넘치는 축제가 되려면 차라리 당원 누구나 국회의원, 당대표할 수 있는 제비뽑기 방식이 훨씬 더 민주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라 바보처럼 믿고 있습니다. 자리를 놓고 싸울 수밖에 없는 틀(방식)이라면, 진보의 가치든 사람이든, 또 그 무엇이든 목적을 위해 대상화 상품화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새로운 삶과 세상은 바보처럼 보여도 기존의 생각과 틀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과 내용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아무리 경쟁을 부추기며, 잘 나고 못나고, 능력 있고 없고, 더 갖고 못 갖고를 따지더라도,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고 바보처럼 살자고 매일 독촉합니다.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을 파고드는 경쟁과 소유, 이기적인 욕망의 쓰레기들을 매일 청소합니다.
• 사람을 소중히 하며 바보처럼 살자고 독촉합니다.
주변에 있는 분들한테 요즘 진흙탕 싸움을 하며 언론에 자주 나오는 분들에 대한 비판과 욕지거리를 매일 듣고 있습니다. 분명 현상적으로 볼 때 욕을 먹어도 싸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저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우리들 끼리 ‘너는 어떻고 쟤는 어떻고’란 이야기를 밥 먹듯 하며 사람 사이를 분리시켰고, 전체적으로 볼 때 같은 내용이지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네가 옳으냐 내고 옳으냐’를 따졌습니다. 속된 말로 조그만 차이도 인정하지 못하면서, 사람이니 생태니 거창한 이야기를 하며 나는 질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어용’으로 만들며 내가 옳은 것을 증명하려는 못된 심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 또한 사람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즘들어 사람에 대해, 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차이를 인정한다고 말만 하지 않고, 진정 마음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 바닥에서, 내 사는 현장에서 바보처럼 살자고 독촉합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큰 은혜를 받고 있기에 가능한 거야, 사람과 세상에 도움을 주며 열심히 살아야 돼” 얼마 전 사람들과 이야기 하던 중에 선배가 제게 한 소리입니다. 그렇구나! 참 나는 철모르고 버릇없이 살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내 주변에 있는 분들과 세상이 고맙게 다가왔습니다. 좋은 세상이 멀리 있지 않고 내가 지금 만나고, 관계하는 분들과 만들어 가는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우리 사이에 꼭 필요한 일,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지만 해야 할 일, 이런 작고 작은 일들을 티내지 않고 해나가는 것이 바로 사람과 세상을 가꾸는 진보운동이구나! 사랑스럽고 고마운 존재들로 가득한 세상,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재의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려는 사회, 이게 바로 공동체이자 말로만 떠들던 사회주의구나 느꼈습니다. 내가 사는 바닥현장에서 고마움을 실천하는 운동, 서로가 좋은 일 많이 하려는, 그리하여 모든 생명이 살맛나고 행복이 넘치는 공동체를 바보처럼 꿈꿔봅니다. 또한 부정, 폭력, 싸움으로 얼룩져 보이는 진보정당도 바닥으로 돌아와 거듭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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