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들 사이에 저는 ‘까칠한 사람’으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모 단체 행사에 갔는데, 한 분이 저를 어떤 분에게 소개하며 “청주에서 제일 까칠한 사람이에요” 라고 말씀하더군요. 속으로 ‘설마 착한(?) 내가 그럴 리가!’ 생각하다가 문득, 참 내가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 거북한 소리 많이 하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뜨끔했습니다. 그런데 몇 일전 같이 일하는 선배가 “너는 다 괜찮은데, 듣기 싫은 소리 잘 듣는 걸 훈련해라. 그것만 되면 한 단계 더 발전할거다” 조언을 했습니다. 이거 참, 그동안 사람들에게 까칠한 소리 많이 해온 나도 상대방의 까칠한 소리에 있는 그대로 듣고 있지 못하고 많이 불편해 했구나 하는 반성이 되고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나 싸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는 상대와 견주어 보며 비교(比較)하는 버릇과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는 불청(不聽) 때문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는 것은 저만의 못된 버릇은 아닌 듯 합니다. 물론 저를 비롯하여 싫은 소리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듣기 좋게 말하고, 껄끄러운 이야기도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는 것을 요즘을 살아가는 훌륭한 처세의 방법이라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소리만 하고 살 수는 없지요. 결국 사람의 소리를 들을 능력이 떨어지거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만히 저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상대방이 나를 죽이려, 노골적으로 나의 약점을 공격하려고 달려들었던 예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애정 있고 진지한 얘기에 대하여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거나, ‘나의 인간성을 드러내고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자존심을 건 싸움을 해 왔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듣기 싫은 소리에 대하여 ‘그래 내가 잘못했지만, 너 그럴 수 있어, 너는 별수 있냐?’식으로 억지를 부리며 쓸데없는 갈등으로 확대시켰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동안 내가 갈등해온 대다수의 경우는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들을 능력, 닫힌 귀(不聽)의 문제였음이 이제야 조금 보입니다. 요즘 매주 수요일 마다 논어 강독 모임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한 구절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法語之言(법어지언) 엄숙하게 원칙에 맞는 말을
能無從乎(능무종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改之爲貴(개지위귀) 잘못을 고쳐야만 귀하니라.
(논어 9장 자한 편, 24)
조금은 늦었지만 비록 듣기 좋지 않은 소리라 하더라도 나의 잘못된 면을 지적해준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쳐나가려 합니다. 지금처럼 말이 많은 시대, 잘 듣고 받아들이는 태도와 능력을 갖는 것은 불통의 시대를 소통의 시대를 바꿀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이라 생각하고, 말을 잘하기 전에 잘 듣는 연습을 먼저 하려 합니다. 제 귀가 활짝 열려 마음도 확 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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