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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100호> 바람은 아직도 부른다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9. 1.

시인은 아직도, 아직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태우는 담배가 늘어나도, 돌벽에 머리를 박고서 애꿎은 민들레 뿌리 뜯어지도록 발길질 하는 날이 많아지더라도, 모락모락 김을 피어올리는 국밥 한 그릇 앞에서 공손한 마음을 가질 줄 아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빌딩을 올리고, 누군가는 빌딩에 세를 내며 일하고, 누군가는 일하고 버린 쓰레기를 담고, 누군가는 그 바닥을 닦지만, 이처럼 불평등한 세상에서 아직, 미치지 않고, 섣불리 화 내지 않고, 무력하게도, 무력하게도 매일 그 고통을 몸에 단단히 새기는 노동자들이다.

 

잔근육처럼 박힌 애환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는 이들이다. 그에게 먹이를 챙겨주려 정작 돌보지 못한 자기 몸을 더듬고, 빈 주머니 속을 뒤적이다가 이내 빈손으로 송구스럽게 인사를 건내는 이들에게, 나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인간으로 살고 계시다고,

쉽지 않지만 당신은 인간으로서 살고 계시다고.

 

세상이 주는 노여움에 남을 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천천히 망칠 줄 아는, 깊은 우물 같은 슬픔 속에 남을 끌어들이지 않고 달 하나 잠잠히 띄우듯 미소를 건낼 줄 아는 당신은, 참 인간으로 살고 계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속의 하느님은 당신들이 매일 같이 지어내는 풍경 속에 살고 있다. 당신과 같은 외로운 모습으로 오늘도 버려지고, 내팽개쳐지고, 지워지고 있다.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는 진실로, 무기력하게, 아니 무기력하기에 아직도 살아 있다.

 

억울하고 슬픈 사람들은 죄다 무기력한 사람들이어서, 죄다 잊혀지고 이름 지워진 이들이어서, 그들은 영락없이 하느님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시인은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망치고 있다. 자신의 하찮은 삶을 찢고 불사르고 남은 재를 비벼 말아 수수께끼 같은 담배 연기를 피어 올리고 있다.

 

어느 시인은 자기 방 한 구석에 화장터 하나를 마련한 뒤 그곳에 자신의 사지 중 하나를 도끼로 찍어 불에 태운 뒤, 남은 뼛가루로 연필을 만들어 죽음의 기억을 생 위에 기록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죽음으로 덧칠 된 그의 시에선 다른 세상의 냄새가 풍겼다.

 

그의 시는 없어진 그의 몸만큼 지어졌다. 언젠가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 나는 귀신처럼 홀연 그의 집을 방문하여 마지막 남은 그의 뼛가루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 줄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그의 시와 완성된 그의 고통 앞에서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가 온전히 세상과 부딪혀 으깨졌으니, 그렇게 그는 가벼워졌으니 바람은 그를 찾아와 데려갈 것이다. 그제야 그는 더 이상 버림받지도, 내팽개쳐지도 않은 바람이 될 것이다. 도무지 포기할 줄 모르는 바람이 되어 사람들을 향해 부르고, 사람들로부터 불리울 것이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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