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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102호> 이어지는 글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1. 6.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글쓰기는 언뜻 결론처럼 끝나는 것 같지만 사실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은 명백하게 또는 암묵적으로 나중에 쓰여질 다른 글들을 가리키며 끝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은 우리의 일상과 궤를 같이하기에 좋은 수단이 된다. 아침에 시작해서 밤에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일상 역시 아직 오지 않은, 모든 사람이 마주하지 않은 내일과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여러 수필 작가가 고백하듯이 글쓰기는 지나간, 지나가버린 하루를 카세트에 넣은 테이프처럼 두 번, 세 번 재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 한 번의 삶을 몸으로 한 번 살고,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살고, 글을 쓰면서 또 다시 사는 일이라는 표현도 생각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네 위에 올라타 진자 운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일상을 다시 떠올리고 기록할 때, 삶의 풍경이 지닌 색감과 향취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일상이지만 일상이 글이 되면 그 일상이 왠지 한층 특별해지는 기분이 든다.

 

어느 때부터인가 어떤 목표를 향해 경주하듯이 달려가는 생활방식이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표에 의해 내 일상이 납작하게 눌리고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그때 되는대로, 갖고 있는 만큼, 있는 모습대로 가볍고 재밌게 살아가는 게 나와 맞았다.

 

글쓰기는 그런 나에게 즐거운 활동이 되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완벽한 어떤 결과물을 내놓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나를,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나를 표현하는 행위다. 과정 속에 머무를 뿐인 나에 관해,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순간의 느낌에 관해 백지에 적어내리는 일은 스스로를 긍정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글을 쓰고 나면 ,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 ‘내가 이런 걸 느꼈었구나새삼 자각할 때는 신기하기도 하다.

 

과정을 사랑하는 순간부터 쏜살같이 흘러가던 시간은 내 옆에 와 서서 머무르는 것 같다. 창 밖 풍경이 보이고,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길을 걷는 행인들이 보인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차도 위를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도, 오후 일을 끝내고 인력사무실로 돌아와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저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날이 저물고 밤이 깊으면 저마다 집을 찾아가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겠지. 농담처럼 지나간 날들과 지나간 사람들, 그리고 지나간 이야기들 속에서 마음에 남아있는 장면들과 내게 건낸 말들과 눈빛들을 떠올린다.

 

글을 끝내며 나는 새로운 글을 기다린다. 다시 말해 새로운 날을 기대한다. 글로서 다져진 생을 향한 욕심은 어제의 상투성에서 벗어나도록 몸부림치게 만든다. 낯선 감각으로 어제 찍은 마침표를 붙잡아 들고서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고 싶다. 당신을 어제와 다른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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