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어머니께서 장바구니를 들고 오셨다. 그 안에서 꺼낸 건, 깻잎 장아찌와 수건으로 몇 겹을 감싼 잡곡밥이었다. “얼른 먹어라.”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내 입에서는 퉁명스런 대답만 나왔다. “나중에 먹을게요. 조금 전에 먹었어요.” 어머닌 그렇게 건네고는 휭 하니 가버리셨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신 덕에 걸음걸이가 많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걷는데 불편해 하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니 짠한 마음과 함께 알 수 없는 짜증이 올라온다. 그런 내가 유난히 싫어지는 오늘이다.
우린 한두 살 터울이 나는 5남매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산 날이 평생을 합쳐도 석 달이 안 될 거라 하셨다. 그 말씀처럼 내 기억 속 어머닌 늘 혼자셨고, 억척스럽게 집안 일 하며 자식들을 챙기셨다. 웃는 모습보다는 소리 지르며 화내는 모습이 더 익숙했다는 것, 생각해 보면 가슴 아픈 일이다. 어머니는 표현을 하지 않으셨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끔찍했음은 우리 형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오늘처럼 수건으로 꽁꽁 싸서 갖다 주신 도시락이다. 어머닌 하루에 한두 번씩 다섯 명의 점심 저녁 도시락을 학교까지 갖다 주셨다. 친구들이 차갑게 식은 도시락으로 식사를 할 때, 나는 어머니가 갖다 주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공기밥을 먹었다. 친구들이 멸치며 계란말이며 갖은 반찬을 나눠 먹을 때, 나는 따끈따끈한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먹었다. 어머닌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 먹일 수 있어서 뿌듯해 하셨지만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 도시락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늦어져 혼자 먹는 것 대신 찬밥이라도 친구들과 같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닌 그렇게 늘 당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표하셨고, 예기치 않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강도는 더 심해지셨다.
다섯 남매를 온전히 혼자서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의 나이 마흔 여덟. 그리고 지금 내 나이 마흔 여덟. 어머니는 내가 자식들에게 너무 무심하다며 타박하면서도 늘 이렇게 덧붙이신다. “자식에게 100만큼 사랑을 주면 200만큼 배신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늘 차고 넘쳤다. 어머니의 뜻에 이견을 내서는 안 된다. 어머니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불효>이며 <배신>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분가한 자식들의 모든 것을 궁금해 하며,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을 안고 사신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고단하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에게 “자식들 걱정은 이제 내려놓으세요. 낼모레면 다들 손주 볼 나이에요.” 하지만 어머닌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자식 키우는 애가 어째 그리 매정하니?” 어머니의 말에 “난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하고 나도 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반 년 넘도록 어머니를 뵐 수가 없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옳다, 그르다’ 멋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어머니께서 살아온 신난한 삶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머니가 여생을 평안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는 자식들을 품에서 떠나보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켰다 미안해 하지만, 우리들은 부족함 없는 유년을 보냈고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당신도 무섭고 두려웠을 텐데, 씩씩하게 우리를 지켜주신 어머니께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부모라면 자식 걱정을 평생 안고 가야 할 마음의 짐이란 걸 나도 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살아오는 동안 최선을 다 하신 걸로 이제는 만족하고 행복해지셨음 좋겠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내리사랑>이라고, 어머니께 받은 사랑을 이제 아이들과 나누고 있다. 돌아서 나가는 어머니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쪽지를 보냈다. “따신 밥,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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