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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제68회> 작고 작은 행복_이영희(회원/청주원영한의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일주일에 두 번, 점심을 사먹으러 일터를 나선다. 우리가 가는 곳은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칼국수집이다. 이 동네 여러 집을 돌아다닌 후, 우리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집 두 곳을 정했다. 이곳을 공평하게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는 것이다. 칼국수집 메뉴가 뭐 그리 많을까 싶지만 그냥 칼국수, 김치칼국수, 칼만두, 칼제비, 해물칼국수까지 정말 종류가 많다. 우리는 항상 같은 것을 주문한다. 그냥 칼국수다. 간혹 주인할머니가 기분이 좋은 날이면 공깃밥 한 그릇을 서비스로 내주기도 하신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식당 앞 공원 햇빛 잘 드는 곳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는 근처 포장마차에서 호떡 3개를 사서 느릿한 걸음으로 일터로 돌아온다. 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때면 어린 시절 소풍 전날의 설렘이 느껴진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예상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닌 지 7년째. 사 먹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기도 했지만, 삶이 팍팍하여 밥값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산에서 시작했던 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찬바람이 살살 부니 따뜻한 국물이 생각났고, 그렇게 우리의 일탈도 시작되었다.

 

여긴 광합성 하기 딱 좋아. 겨울햇빛 따뜻한 거 모르는 사람 많을 거야.”

가성비 최고지? 이 가격에 이만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 드물 걸.”

호떡 두 개 1400원이면 좋은데... , 그래도 이 정도면 입가심하기 좋지.”

별 것도 아닌 일에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중년 부부의 수다는 끝이 없다. 요즘 이야기의 주요 소재는 노후와 참선(명상) 수행에 관한 것이다. 난 명상을 이야기하기엔 많이 부족하여 주로 듣는 입장이고, 노후에 관한 것이라면 그래도 제법 할 말이 많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불안하기만 했던 노후였는데, 지금은 남 얘기하듯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다. <내 소유의 집이 없다>는 게 불안했던 얼마 전과 걸릴 게 없어 편안한 지금.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생각은 이렇게나 바뀌었다. 아이들이 커버리니 큰집도 새집도 필요 없게 되었고, 둘이 사부작거리며 지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괜찮다. 고맙게도 아주 조그만 화단이 있다면 밥상에 올릴 만큼의 푸성귀를 키우며 소일하여도 좋을 것이다. 볕 잘 드는 곳에 의자 하나 두고 앉아 노곤한 잠을 청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넉넉할 시간.

 

지금보다 젊었던 어느 시절에는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욕심나는 일도 많았다. 변화하지 않고 일상에 안주하는 것은 젊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금 시간이면 어디서 머물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도, 하는 일의 범위도, 좋아하는 일도, 자주 가는 산책길도, 종종 들르는 카페도 가까운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사는 게 그만큼 단촐해졌다는 이야기다. <휘게>라는 말이 있다.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행복은 찾는다는 의미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시간, 친구와 마주앉아 나누는 이야기, 따뜻한 차 한 잔과 조용한 음악소리, 아이의 밝은 웃음처럼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일상의 작은 행위 안에서다. 크고 멋들어진 일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거, 참 별 거 없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성취해야 의미있는 삶이라고 평가하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이 매일 찾아온다는 게 고맙다. 그렇게 조용히 나이 들어가는 게 더욱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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