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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어정쩡한 시간 속에 어정쩡한 시간 속에 박현경(화가) ‘거기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최종적인 답을 얻으려고 떠났다. 교사인 내게 비교적 자유로운 기간인 1월, 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의 대학교에서 어학 수업을 듣고 지역 노숙인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한 달 동안 현지인들과 부대껴 살며 얻은 결론은, 할 만하겠다는 것. ‘좀 외로울 때도 있겠지만, 살아갈 수 있겠어.’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 일 년간 차근차근 준비하자. 유학 절차를 밟아서 내년에 다시 오자. 그리고 공부하면서 여기 뿌리를 내리는 거다.’ 그렇게 귀국해 2월을 맞았다. 전공에 딱히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간절히 ‘떠나고 싶어서’ 뚫어 온 길. 지금까지의 삶을 벗어 던진 채 훌훌 멀리 날기 위해 수년째 독하게 .. 2022. 9. 26.
별 것 아닌 ​별 것 아닌. 잔디 친구와 세상을, 일상을 살며 깨달은 사소한 부분들을 신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의 경험과 나의 현실이 맞닿아 있어 더 신나고, 친구가 스스로를 깊이 사랑하며, 참사랑으로 자신을 보듬는 모습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나에게 그 귀한 경험을 들려주나 내가 들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다가, 그 사랑의 본질을 알아듣는 내가 기특하고 친구의 깨달음에 공명한다는 사실이 기쁘고, 편안하여서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한다. 헌데, 거기까지인 날이 있다. 아니, 허다하다. 그저 거기까지여서 뒤돌아보면, 현실은 늘 그렇다. 다 먹고 난 빈 요구르트병은 책상 위 모니터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고, 이 집엔 물컵 하나 설거지하는 사람이 없으며, 아이는 일주일 전에 약속한 오늘 함께 하기로 한 일정에 .. 2022. 9. 26.
<125호> 나를 돌보는 연습(8) 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괜찮은 것일까 동글이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하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한다. 작은 것 하나 하나가 참 고마워서. A가 '고맙다고 이제 그만해. 당연한 걸 왜 자꾸 고맙다고 해~' 라고 하기에 '당연한 건 없고 누군가 애써주는 것이 고마운 마음에 고맙다고 하고 싶어' 라고 답했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이켜보니 내 마음을 표현하는 '고맙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몰입하여 다른 이의 감정을 모른채하고 있지는 않았나 그 사람이 온전히 내게 주는 호의를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호의를 누리지 못할 때도 참 많았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었는지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상대방에게 적절한 표현이었는지.. 2022.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