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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경11

<제88호> 딴짓이 우리를 구원하리라_박현경(교사) 폭발 직전의 혹성을 탈출하는 기분으로 교무실 문을 나선다. 첩보원이 도청 장치를 만지듯 재빠르게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팟캐스트 재생 버튼을 누르면 흘러나오는 ‘매불쇼’나 ‘김현정의 뉴스쇼’ 또는 ‘검은 방’, 아님 뭐든. 아, 산소 같은 이 소리……. 나는 심호흡을 한다. 사실, 폭발 직전인 건 교무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숨 쉬는 것까지 대학 입시를 위해 이루어지는 듯한 이 견고한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움직이노라면, 내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느낌에 숨이 가쁘다. 그리고 내 안엔 ‘딴짓, 딴짓, 이거 말고 딴짓!’이라는 강렬한 욕구가 부풀어 오른다. 좋아하는 방송을 통해 ‘다른 세상’과 교신하는 건 이 혹성을 벗어나며 가장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딴짓. 성적이나 입시가 아닌 ‘다른 세상’ 이야기에 .. 2019. 10. 24.
<제86호>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우린_박현경(교사) 일요일 아침.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햇살이 우리 방에 쏟아진다. 일주일을 달려온 우리 몸은 햇살에 녹는다. 내 옆에 누운 그대의 잠든 얼굴을 본다. 그 옆에 누운 왕순이의 갸르릉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나란히 아침볕을 쬐기까지 우린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서로에게로 왔는가. 그대는 그해 여름 참 많이 달렸다.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날마다 짧게는 여덟 시간, 길게는 열한 시간 동안 주로 곱창볶음이나 찜닭을 싣고서 원룸촌 골목골목을 달렸다. 야식집 ‘왕십리 순대곱창’에서 일한 지 일 년쯤 돼 가고 있었다. 야식을 주문하는 이들은 대개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대도 일을 마치면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두 다리.. 2019. 10. 24.
<제85호> 하복 윗도리에게 사과를_박현경(교사) “어젯밤에 집에 가서 하복을 다시 입어 보았다. 그래, 생각했던 만큼 나쁘지는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히려 하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하복 윗도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벌써 오래전이 되어 버린 어느 날 오후에 나랑 같이 먼 길을 걸어가서 그 하복을 사 왔던 엄마에게도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었다.” 2002년 9월, 열아홉 살 박현경이 썼던 이 글을, 2019년 5월, 서른여섯 살 박현경이 다시 읽는다. 옛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연필 손글씨. 17년 전 고3 교실 어느 쉬는 시간에 이 문장들을 적으며 시큰했던 코허리 느낌도 생생히 떠오른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IMF 사태의 여파였다. 교복 값은 큰 부담이었고 그런 우리 가족.. 2019.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