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경11 <제83호>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_박현경(교사) 3월이 오고 고3 담임 생활이 시작됐다. 이 시기엔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서로를 알아 가는 기쁨도 분명 있지만, 종일 바쁘게 내달려야 하는 힘겨움이 그 기쁨을 잠식한다. 특히 첫 주 동안은 화장실 갈 짬조차 내기 힘들다. 수업에 들어갔다 오는 틈틈이 서류들을 작성해 내고, 급히 교실에 달려가 전달 사항을 전하고, 학년별 또는 교과별 회의에 참석하고, 그러다 종이 치면 또 서둘러 수업에 들어가고……. 그렇게 온종일 종종거린 끝에 맞이하는 저녁 일곱 시 이십 분은 꽤나 피곤해 이젠 좀 집에 가 쉬고 싶은 시간이지만, 바로 그 시각에 일반계 고등학교에선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또 하나의 일과가 시작된다. 학년 초부터 공부 분위기를 잡아 주기 위해 담임들 대부분이 늦게까지 남아 자율학습 감독과 학생 상담을 한다... 2019. 10. 23. <제82호> 작별_박현경(교사) 남편과 내가 오늘 픽퓌스 가(街)에 다시 온 건, 히앗 아저씨랑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35일 전 프랑스 땅에 첫발을 디딘 날 저녁, 우린 바로 이 거리를 걸어 우리의 첫 숙소에 도착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 삐걱이는 나선형 나무 층계를 오르고 또 올라 7층 복도 끝 조그만 원룸. 거기에 짐을 풀고 낡은 계단을 다시 빙글빙글 돌아 내려와 처음 간 곳이 동네 슈퍼 ‘시티스’. 이 슈퍼의 채소 코너 담당 히앗 아저씨가 우리를 어찌나 정답게 대해 주시던지, 긴 비행 끝에 배낭을 멘 채 낯선 거리를 걷느라 쌓였던 피로가 금세 녹아 사라졌었다. 뭘 살지 머뭇대면서 시간을 지체해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밤 열두 시까지 골라도 돼요. 천천히 골라요.”라며 환히 웃으셨는데, 별것 아닌 그 말씀이 참.. 2019. 10. 23. 이전 1 2 3 4 다음